저는 왕자의 사랑만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와 함께 간절히 원하는 건 ‘불멸의 영혼’이랍니다. 죽은 뒤에도 반짝이는 별들 너머, 찬란한 미지의 세계로 갈 수 있는 영혼 말이에요. 인간만 가질 수 있는 영혼을 인어들이 얻을 수 있는 길은, 한 인간이 죽어서나 살아서나 진실로 나를 사랑하겠다고 맹세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의 영혼이 내 몸 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거죠. 사랑과 영혼은 그렇게 함께 가는 거래요.
왜 그렇게 영혼이 갖고 싶었냐구요? 할머니 말씀처럼, 고단하고 짧은 인간의 삶보다 편안한 인어의 삶을 300년 누리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구요? 글쎄요, 모르겠어요. 한번 사랑과 영혼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드니까, 그게 없는 삶은 아무리 풍족하고 화려해도 무의미해 보였어요. 혀를 잘려도, 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날카로운 칼 위를 걷는 것처럼 고통스러워도, 그걸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실패했어요.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해서 꼭 진정한 사랑과 불멸의 영혼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닌가 봐요. 그래도 실패했다고 처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요. 언니들이 건네주는 칼로 왕자의 심장을 찔러 다시 인어가 되는 대신 저는 물거품으로 녹아 없어지는 쪽을 택합니다. 화가 나거나 억울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슬플 뿐이었지요.
안데르센 아저씨는 제가 죽는 대목에서 눈물을 흘렸다는군요. 저는 아저씨가 가여워서 눈물이 나요. 깊고 차가운 바닷속에 살면서 제가 바깥 세상과 태양을 동경했던 것처럼 아저씨는 춥고 비좁은 다락방에 살면서 훌륭한 작가를 꿈꾸었는데, 세상의 냉대와 비웃음에 절망했던 적이 많았거든요. 제가 물거품이 될 때 자신의 꿈이, 자기 존재 자체가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을 거예요.
그래도 우리는 다시 살아났어요. 안데르센 아저씨는 최고의 동화작가가 됐고, 저는 공기의 요정이 된 거예요. 300년동안 착한 일을 하면 영혼을 얻을 수 있다는군요. 그 구원의 끈이 아마도 제 이야기를 동화로서 살아남게 해 주지 않았을까요. 착한 아이를 찾아낼 때마다 300년에서 1년이 줄어든다니까, 절 좀 도와 주지 않으시겠어요?
김서정(동화작가·공주영상정보대교수)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