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앞으로의 상황은 생각보다 어둡다. 고유가는 수입지출을 늘리고 반도체값 하락은 수출로 벌어들일 달러금액을 줄인다. 경상수지가 악화된다는 뜻이다.
달러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줄어들면 달러값이 뛴다. 환율이 뛰는 것이다.
환율이 올라갈 요인이 있는데 억지로 붙들어매면 달러가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외환보유고 도 줄어든다. IMF 때 겪은 일이다.
우리 경제가 IMF 위기를 성공적으로 벗어났다는 대내외의 평가를 받게 된 데는 경상수지 흑자폭 확대와 외환보유고 확충 덕분이었다. 이 두 가지가 흔들릴 경우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에 대한 외국인의 시각도 바뀌게 된다. 최근 증시에서 연일 보유증권을 팔아치웠지만 아직은 이 돈을 달러로 바꾸지 않은 외국인 자본이 정말 달러환전을 하면서 한국을 떠날 경우 환율에 미칠 충격은 가공할 만하다.
대우자동차 매각 실패로 인해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의 차질 가능성이 나타났으며 앞으로 수습도 여의치 않을 경우 대외신인도가 낮아지면서 외국인 자금 유출과 해외자금 차입의 어려움이라는 IMF 악몽이 재연될 수도 있다. 위기극복과정에 있는 소개방국에서 대외부문의 불안은 경제안정기조 유지에 가장 큰 위협요인이다.
이미 9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 적정수준에 근접한 환율수준, 경상수지 흑자는 대외부문 자체가 현 이상 징후의 원인이 아님을 일러준다.
그러나 문제는 IMF 위기 이후 우리경제의 방파제 역할을 해온 대외부문의 균형마저도 내부적 취약성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가 가진 선택의 폭은 거의 없다. 금융이나 기업부문의 경쟁력제고 없이 환율이나 경상수지, 외환보유고의 관리만으로는 상황호전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모순된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 경제의 진정한 경쟁력이 답보상태를 보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거시정책적으로 시장의 미비점을 효과적으로 메워왔기 때문이다.
이제 대내외시장의 연계성이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 금융 및 외환시장 여건부터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 사실 실물경제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금융이나 외환시장의 규모나 깊이는 세계적으로 일천한 처지이며 우리경제는 여전히 대내외 충격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취약성에 시달리고 있다.
당국은 환율, 경상수지, 외환보유고의 관리 등 지표상의 안정만을 목표로 하는 직접적인 조정보다는 새롭고 다양한 시장참여자들을 통해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 나아가 내부적 시장확충 노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하여 건전성 규제감독의 정비나 비상계획 차원에서의 자본유출입관련 안전장치를 구비해놓는 일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최공필(미 샌프란시스코 연준(FRB)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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