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는 이미 심각한 위기국면에 빠졌다. 우선 10%의 성장률을 자랑하던 실물경제가 유가상승과 반도체가격 하락으로 맥없이 주저앉고 있다. 여기에 뜻하지 않은 대우자동차 해외매각 실패는 구조개혁을 표류상태로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40조원의 공적자금 투입을 위기탈출을 위한 승부수로 던진 것이다. 그런데 이 정책이 과연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 또 마지막 공적자금 투입이 될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지배적이다.
이런 분위기에 대한 근본원인은 지난 2년반 동안의 구조개혁 정책의 실패에 있다. 정부는 110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부실채권을 줄이지 못하고 구조조정은 제자리 걸음이다. 아직 부실채권에 눌려 금융기관과 기업의 동반붕괴가 계속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부실채권을 은폐하거나 축소하고 부도위기에 처한 금융기관마다 임기응변식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해 땜질처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했기 때문이다. 부실채권은 암세포와 같아 뿌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계속 확산된다.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은행 종금사 보험사 투신사 상호신용금고 등 모든 금융기관을 상대로 총 85건에 대해 11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을 밑빠진 독에 불 붓기식으로 투입한 것이다. 결국 공적자금만 낭비하고 구조적 위기를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의 최대 실패작은 대우그룹이다. 부실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대우는 IMF위기 직후 그룹을 해산하고 건전한 기업만 자금을 투입해 살려야 했다. 그러나 계속 시간을 끌다 결국 부실채권만 증폭시켰다. 어쩔수 없이 부도처리하자 경제가 다시 불안에 빠지고 구조개혁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재벌개혁이 아니라 재벌을 죽여 화를 자초한 것이다. 또 문제가 된 것은 제일은행이다. 5000억원을 받고 외국자본에 매각하며 무려 17조원의 공적자금을 퍼부었다. 이는 부실은행이 외국자본에게 공적자금을 제공하는 통로로 이용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개혁이 엉망이 된 상황에서 정부는 과거 개혁정책 실패에 대한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지 않는 것은 물론 확실한 근거나 객관적 기준도 없이 40조원의 공적자금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당연히 과거 실책을 연장 확대하는 것으로 해석돼 시장이 실망세로 돌아선 것이다.
그러면 향후 추가 공적자금의 투입과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동안 정부의 자의적 판단에 의존했던 정책을 중단하고 법제화를 통해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정부는 공적자금의 원칙있는 투입과 공정한 관리를 위해 다음의 내용을 포함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첫째, 부실채권의 실상을 규명하고 부실을 초래한 관련자들의 책임을 엄정하게 물어야 한다. 금융기관의 임직원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 대주주, 금융기관 감독기관, 회계감사인, 부당 대출압력 행사자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둘째, 공적자금 투입에 대한 부담이 선량한 국민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철저한 회수대책을 세워야 한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이자, 수수료 또는 특별분담금을 징수해 공적자금 이자에 충당함으로써 금융기관의 모럴해저드를 방지해야 한다. 셋째, 공적자금 투입처별로 투입사유, 투입형태, 회수대책 등을 담은 공적자금 운영상황을 국회와 감사원에 보고하고, 국민이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넷째,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의 비리와 불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내부고발을 권장, 보호해야 한다. 다섯째, 공적자금의 투입과 회수, 투입된 돈의 감시 등 공적자금의 공정한 관리를 위해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전담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이런 절차에 따라 추가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하고 관리해야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경제의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구조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이필상(고려대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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