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권오율/대학 연구-교육중심 분리안된다

  • 입력 2000년 9월 23일 19시 26분


정부가 7월에 발표한 국립대발전계획안은 44개 국립대를 연구중심 교육중심 특수목적 실무교육 등 4개 유형의 대학체제로 개편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대학교육정책은 세계화와 정보지식기반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할 대학의 발전을 위해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대학 지원자가 대학의 수용인원보다 절대적으로 많았지만 2003년부터는 반대로 수용인원이 더 많아진다. 게다가 작년부터 외국 대학이 국내에 들어올 수 있게 됐고 올해 9월부터는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자유롭게 조기유학을 갈 수 있게 됐다.

대학 지원자가 정원보다 적을 때에는 학생과 사회 중심의 교육정책기조가 마련돼야 한다. 궁극적으로 정부가 대학교육을 보조하는 것은 대학에서 얻는 지식에 외부경제효과가 있고 형평성을 높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국립대 학생이든 사립대 학생이든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 또 기초 및 보호 대상 학문 분야는 외부경제효과가 크므로 그 분야를 택하는 학생에 대해서는 국립이냐 사립이냐를 가리지 말고 충분한 지원을 하는 정책이 바람직하다. 이런 맥락에서 사립대와의 연계성과 조화를 참작하지 않은 국립대발전계획안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육의 수요가 공급보다 많고 국제적 경쟁이 없던 시기에는 대학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고 대학운영의 합리성이 크게 요망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학을 합리적으로 운영하지 않으면 존폐를 염려할 때가 됐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선 대학의 수가 너무 많다. 국립대 44개를 포함해 4년제 대학이 모두 182개나 되니 인구 100만명에 대학이 4개꼴이 되는데 이는 호주의 2배가 된다. 대학이 너무 많아 대학운영에 규모의 경제의 혜택을 볼 수 없다. 대학의 질을 높이고 규모의 경제의 혜택을 받기 위해 대학간 경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학부제와 대학편입을 대폭 늘려야 한다.

다음으로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다름 없는 대학총장을 직선제로 뽑는 것은 지연 학연에 얽매인 풍토에서는 타당한 일이 아니다. 또 보직교수가 너무 많다. 벼슬을 좋아하는 사회여서 인지 보직을 맡지 못하면 무능교수로 여겨지는 풍토까지 있다. 서양에서는 대부분의 교수들이 연구에 지장이 있으므로 보직을 거절한다. 대학경영의 합리화 뿐만 아니라 교수의 연구업적을 높이기 위해서도 총장 직선제를 없애고 보직을 대폭 줄여야 한다.

국립대발전계획안은 일반대학을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으로 구분하겠다는데 이것은 대학에서 연구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분리된다고 본데서 나온 정책인 것 같다. 그러나 대학교수가 연구하지 않고 첨단지식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가. 즉 연구와 가르치는 것은 서로 분리할 수 없다. 교육중심대학이 가령 학부생만 가르친다면 교수들이 무슨 인센티브가 있어 연구하며, 교과서적 지식만 제공주는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어떻게 학문의 심오한 의미를 느끼고 도전할 수 있게 하겠는가.

권오율(호주 그리피스대 석좌교수·호주한국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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