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27·대구은행)이 금메달을 따내기 위해선 딱 0.013점이 모자랐다.
96년 애틀랜타올림픽 체조 뜀틀부문에서 여홍철이 필요했던 점수는 0.031점이었지만 이주형은 불과 0.013점 때문에 분루를 삼켰다.
체조 남자 평행봉 결승전이 열린 25일 올림픽파크 체조경기장.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이 부문 우승자인 이주형은 흠잡을 데 없는 거의 완벽한 연기를 구사하며 9.812의 높은 점수를 얻었으나 결선 진출 8명 가운데 7번째 출전자로 나선 중국의 리 샤오펭이 9.825를 얻는 바람에 은메달을 따냈다.
96년 애틀랜타올림픽의 여홍철에 이어 국내 체조 사상 올림픽 두 번째 은메달.
비록 체조계의 숙원인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진 못했지만 이주형은 한국 선수들도 높고 높은 세계 체조의 ‘벽’을 뚫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주형은 이날 최고급 난이도인 ‘SE(슈퍼 E난도)’에 해당하는 기술인 ‘모리스에 파이크드(뒤로 두 바퀴 공중 회전후 무릎을 완전히 편 상태로 어깨에 평행봉을 걸치는 동작)’ 등 자신의 장기를 마음껏 발휘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우승시 얻은 9.750보다 0.062점 높은 9.812를 얻을 정도였다.
하지만 결정적인 곳에서 불리함을 안았다. 바로 연기 순서.
이주형은 출전 선수 8명 가운데 4번째 출전 선수로 배정돼 연기를 했다. 하지만 결선에선 뒤에서 연기할수록 더욱 유리하다는 게 체조계에선 ‘불문율’로 알려져 있다.
다른 선수들과의 경기를 모두 비교하기 때문에 수준높은 기술을 구사하면 심판진의 점수가 후해진다. 게다가 관중의 호응도가 후반으로 갈수록 열광적이다. 심판도 사람인 이상 팬들의 호응이 폭발적이면 마음이 움직이기 마련이다.
8명 가운데 7번째로 나선 리 샤오펭은 이주형과 비슷한 수준의 연기를 소화했지만 ‘눈에 안 보이는 플러스 점수’로 우승을 차지한 셈이다.
남자 평행봉에 앞서 열린 여자 평균대에서도 마지막 출전 선수인 중국의 리우 슈안이 9.825점으로 러시아의 에카테리나 로바즈니우크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따냈었다.
이주형은 경기가 끝난 뒤 “순서가 뒤였더라면…”하고 아쉬워했다.
<시드니〓김상수기자>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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