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일이 심상치 않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김대중 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자마자 중심을 못 잡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니 지난 정권의 악몽이 불현듯 되살아난다. 전개되는 상황이 판에 박은 듯 닮아서 불길한 기분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이다. 돌이켜보니 사단(事端)의 핵심은 임기말 권력누수현상에 대한 두려움에 있었던 것 같다.
권력자들은 한결같이 레임덕의 도래를 두려워했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차세대 주자들이 부상(浮上)하는 것을 극력 막으려는 것도 그 한 예일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노력이 무리한 악수가 되어버리면서 상황은 더 악화하고 말았다. 김영삼 전대통령이 ‘내 사전에는 레임덕이란 없다’, 그 한마디 외치기 위해 노동법을 심야국회에서 날치기 강행 처리했던 것을 상기해 보라. 김대중대통령 역시 ‘밀리면 끝장’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그래서 정국이 꼬이고 있는 것이다. 레임덕을 피하려다 오히려 레임덕을 가속화하고,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오히려 권력을 약화시키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가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다. 권력이 새나간다고 주먹을 움켜쥐면 아예 권력이 통째 날아가 버리고 만다. 레임덕의 도래를 부정하지 말고 그 파고(波高)를 현명하게 타고 넘을 길을 찾아야 한다. 그 요체는 국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민심을 잡는 것이다. 그 고리는 권력자가 마음을 비우고 권력을 나누는데 있다. 달리 말하면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 이것이 레임덕도 막고 나라도 살리는 길이다. 김대통령의 개심(改心)과 그 측근들의 개안(開眼)을 촉구한다.
국정의 난맥을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조직이 살아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다 보니 공조직이 유명무실해지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은 걸핏하면 집권여당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지만 그것이 어디 가능한 일인가. 대통령의 비선 조직이 북치고 장구치는 상황에서 통일부장관의 존재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대통령에 해당하는 영어 president는 원래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대통령이 혼자 다 결정을 내리면 회의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조직이 힘을 발휘하도록 해야 나라의 기강도 서고 정책의 효율도 올라간다.
권력자는 원래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김대통령도 그런 경향을 자주 보인다. 청와대로 사람들을 불러놓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자면서 대통령이 참석자들에게 상의를 함께 벗을 것을 권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뿐, 청와대 발언록을 훑어보면 대통령이 대화를 독점하다시피 한다. 권력의 동맥경화가 심화될수록 ‘무늬만 대화’일 뿐 실제로는 일방적 교시가 넘쳐나게 된다. 권력을 나누는 첫 걸음은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보통 인간의 정치적 능력에 대해 낙관적으로 기대하면서 그와 동시에 그 한계를 견제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위대한 것이다.
김대통령 주변에는 대통령의 ‘탁월한 능력’에 압도된 나머지 쳐다만 보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러나 이번 주 들어 그나마 정국이 풀릴 기미를 보이게 된 데에는 민주당의 소장파 의원들이 대통령을 향해 고언(苦言)을 감행했던 것이 큰 변수로 작용하였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대통령을 너무 믿어서는 안된다.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실천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충정이 될 것이다.
‘이게 민주주의냐’ 하고 비웃은 어느 5공 인사의 말 한 마디에 자존심이 상한 사람이 무척 많다. 부디 ‘국민의 정부’가 민주주의를 실천함으로써 레임덕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길이 없는 것 같다.
서병훈(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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