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NYT의 오류 인정

  • 입력 2000년 9월 27일 18시 57분


미국 사회에서 유럽계와 달리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계들은 ‘이중의 충성심’을 지니고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거주국과 조상의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함께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군사안보 기관이나 연구소에서 일하는 아시아계들은 연방수사국(FBI)의 ‘요시찰’ 대상이다. 중요한 군사기밀을 조상의 나라에 넘겨줄 수 있다는 의심을 받기 쉽다. 군사기밀을 한국에 넘겨준 죄로 복역중인 한국계 로버트 김 사건이나 최근 석방된 중국계 리원허 사건은 이런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살펴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핵물리학자 리원허가 핵탄두 기술을 중국에 제공한 혐의로 FBI의 조사를 받는 사실을 특종한 뒤 시종일관 주도적으로 보도했다. 결국 법무부는 ‘냉전 후 최대 국가안보 저해사범’을 체포해 보석도 없는 독방 구금 결정을 받도록 했다. 법무부는 그런 지 9개월만에 리씨와 치욕적인 유죄협상을 벌여 59개 혐의 중 58개를 취소해 보안장치가 없는 컴퓨터에 핵개발 관련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했다는 혐의만 남게 됐다.

▷보안관리 소홀과 간첩죄의 차이는 엄청나다. 취소된 58개 간첩혐의는 종신형 감이다. 아시아계들은 수사와 재판과정에 인종차별의 편견에서 비롯된 마녀사냥이 진행됐다고 온통 난리다. 로스앨러모스의 거의 모든 연구원들에게서 보안관리 소홀이 적발됐는데도 유독 리씨만 간첩죄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클린턴 정부는 ‘중국계 조상을 둔 것이 죄냐’고 항변하는 아시아계를 달래느라 부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편집자가 독자에게 보내는 형식의 장문 기사에서 리씨의 혐의에 대한회의적 견해를 함께 보도해 균형을 갖췄어야 했다고 잘못을 시인했다. 그러면서도 많은 부분이 논란인 상태로 남아있어 이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취재하는 팀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언론은 무오류일 수 없다. 마감시간의 압박, 정보 부족, 때로는 기자나 편집자의 편견에서 오보는 발생한다. 뉴욕타임스는 오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실을 찾는 노력을 다시 시작함으로써 공기(公器)의 바른 자세를 보여줬다.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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