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들이 집무실에 편안히 앉아서 방문객을 ‘접견’하던 시대는 지난 것인가. 주한 외국대사들이 자기 나라 홍보를 위해 몇 개월씩 지방 순례를 하거나 심지어 복싱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 오르는 ‘행동파’로 변모하고 있다.
98년 한국 외환위기 와중에 취임한 아서 페론 주한 캐나다 대사. 그는 양국간 투자무역 기회를 늘리기 위해 지방 순례에 나섰다. 서울에만 머물러서는 위기에 처한 한국경제 현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페론 대사는 무려 3개월에 걸쳐 경기도에서 제주도까지 샅샅이 훑으며 지방 경제인들과 만났다. 그의 ‘국토 대장정’에 동행한 대사관 직원은 통역과 비서 단 두 명. 자동차도 대사 전용차 대신 렌터카를 이용했다. 그는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 광주에서 열린 김치 페스티벌에 참석한 것과 초가집에서 잔 것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즐거운 추억”이라고 말한다.
지방순례 덕분에 98년 캐나다의 대한(對韓)투자는 미국을 추월했다. 그는 “서울 집무실에서 10명의 기업인을 만나는 것보다 1명의 지방 경제인을 찾아다니는 것이 양국간의 유대를 깊게 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취미 생활을 이용해 자국 홍보에 나서는 대사들도 있다. 한인 3세인 비탈리 펜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는 복싱 선수 출신. 그는 복싱 강국인 우즈베키스탄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직접 복싱 글러브를 끼고 경기를 하기도 한다.
한국인들에게 자국 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효과적인 홍보 방식.
할릴 다으 터키 대사는 지난해 한국 문화인과 언론인들을 터키로 초청해 이슬람 문화를 소개했다. 당시 터키를 방문한 일행은 ‘CDC(Cyprus Dream Club)’를 조직해 한국에서 터키 문화를 널리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CDC는 지난해 터키 지진이 발생했을 때 구호물자 모금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지원활동을 펼쳐 홍보 사절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양국간 중요한 정치 경제 현안이 있는 국가의 대사들은 세미나 개최에 주력한다.
산토시 쿠마 인도대사는 26일 ‘인도 정보기술(IT)’ 설명회에서 한국 첨단기업들의 인도 진출 가능성에 대해 참석자들과 얘기를 나눴다.
후베르투스 폰 모르 독일 대사도 최근 독일 통일 10주년 기념세미나에서 한국과 독일의 통일 방식을 비교하는 연설을 해 관심을 모았다. 기회 있을 때마다 자국 상품 홍보에 열을 올리는 대사들도 많다.
장 폴 레오 프랑스 대사는 최근 한 기념행사 리셉션을 주최하는 자리에 프랑스 상품을 소개하는 진열대를 만들어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월간 디플로머시의 임덕규 회장은 “최근 대사들이 적극적으로 홍보 활동에 나서는 것은 경제관료나 기업가 출신 대사들이 늘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정통 외교관 출신들이 권위와 의전을 중시하는 반면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한 ‘경제통’ 대사들은 ‘발로 뛴다’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이다.
<정미경기자>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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