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의 불모지 에스토니아가 ‘올림픽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남자 10종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충격파를 던졌다.
28일 열린 최종일 경기가 끝난 뒤 시상대 맨위에 선 선수는 세계기록 보유자 토마스 드보락(체코)도 아니었고 그의 라이벌 크리스 허핀스(미국)도 아니었다. 바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에르키 눌(30·에스토니아·사진)이었다.
7번째 경기가 끝날 때까지 4위를 달리던 눌은 8번째 경기인 장대높이뛰기와 창던지기, 1500m에서 대역전극을 펼쳐 총 8641점을 획득, 로만 세브를(8606점·체코)을 간발의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에스토니아로선 24년 알렌산더 클루버그가 10종경기에서 동메달을 따낸 뒤 첫 메달이자 사상 첫 금메달.
눌의 우승엔 80년 모스크바와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10종경기 2연패를 달성한 ‘철인’ 댈리 톰슨(영국)이 있었다. 톰슨은 로버트 메티아스(48, 52년·미국)와 함께 올림픽 2연패의 주인공.
육상의 ‘변방국’인 에스토니아는 모처럼 얻은 ‘될성부른 떡잎’을 위대한 조련가 톰슨에게 맡겨 자국의 육상사를 바꿔 놓은 것.
눌은 95년 세계선수권에서 4위를 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 하지만 애틀랜타올림픽 6위, 97세계선수권 6위, 급기야 99년 세계선수권에서는 14위로 갈수록 하락세를 보였다. 에스토니아로선 올림픽 메달을 선사해줄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래서 톰슨을 끌어들였고 결국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톰슨의 힘은 절대적이었다. 경기 중간중간 코치를 하는 것은 물론 특히 위기상황에서 그의 존재는 빛났다. 7번째 경기인 원반던지기에서 눌이 두 번 파울하고 세 번째도 몸이 서클 밖으로 나갔다는 판정이 나와 0점 처리될 위기에 처했지만 ‘올림픽 영웅’인 그의 어필로 739점을 획득할 수 있었다.
<양종구기자>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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