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수익증권통장을 제외한 모든 계좌의 입출금이 일시 중지되는 등 고객들의 불편이 잇따랐다.
동원증권측은 이날 “전날 체결 결과를 데이터베이스에 이관하는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HTS를 통한 사이버거래가 불가능하지만 주식주문은 지점이나 콜센터를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객이 전화주문으로 몰리면서 콜센터 연결이 쉽지 않았으며 이 과정에서 주문지연으로 피해를 본 고객들도 속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직원들이 주문건수마다 일일이 원장과 전날 거래내용을 이중으로 확인하는 바람에 주문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 증권사 콜센터엔 하루 평균 1000여건에 불과하던 통화량이 개장 직후 1시간 만에 9000여통을 웃도는 등 북새통을 이뤘다.
여기에다 당초 동원증권측은 ‘입출금에는 불편이 없을 것’이라며 장담했지만 정작 영업점에는 ‘수익증권 외엔 입출금 응대를 하지 말라’는 내용의 공문을 내려보냈으며, 이에 따라 돈을 인출하지 못한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동원증권 전산사고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은 사이버공간을 통해 피해보상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법정 대응을 시도하고 있다. 동원증권 고객들은 28일 오후 인터넷 증권정보사이트인 팍스넷 씽크풀 이큐더스 등에 피해보상위 설치를 제안했으며, 이날까지 50여명으로부터 참여의사와 피해상황을 접수했다는 것. 현재 동원증권 고객은 하루평균 1만5000여명 수준이며 하루 약정규모는 3000억원에 달한다.
동원증권 김용규(金容圭)사장은 피해보상과 관련해 “사안별 유형별 조사를 통해 보상한다는 게 기본원칙”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적어도 보상을 받으려면 ‘전산사고가 발생하기 전 매매주문을 낸 경우와 전산사고 발생 이후 각 지점 콜센터를 통해 거래를 시도한 기록’ 등 명백한 입증자료를 제시해야 보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강운기자>kwoon90@donga.com
▼"있을 수 없는 원시적 사고"▼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원시적인 사고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서도 언제 그런 사고가 생길지 모른다.”
동원증권 전산사고를 두고 한 증권사 전산팀장이 한 말이다.
고객의 신뢰에 기반을 둔 정보시대의 기업경영에서 전산시스템은 ‘경영의 동맥’ 같은 역할을 한다. 미국 미네소타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금융업종의 경우 전산서비스가 2일 이상 중단되면 25%는 곧 파산하고 40%는 2년 이내에 문을 닫고 만다.
고장과 중단이 없는 전산서비스를 위해서는 뭐니뭐니 해도 2중 3중의 안전판 마련이 필요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산센터와 백업시스템. 전산센터란 전산설비를 영업장과 구분해 따로 설치해놓은 곳을 말한다. 백업시스템이란 전산시스템 2개 이상을 동시에 운영하면서 하나가 사고로 멈춰 설 때 다른 장소에 있는 똑같은 시스템이 즉각 바통을 이어받아 가동되도록 한 시스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증권사 중에서 백업센터를 갖춘 곳은 신영증권과 삼성증권 두 곳에 불과하다. 전산전용센터를 따로 마련해놓은 증권사는 대신, 대우, 메리츠, 삼성, 동양 등 5곳.
금감원 정보기술검사실 김인석 팀장은 “백업센터와 전산센터의 설립을 누차 권고하고 있으나 그때마다 ‘돈이 없어서 엄두를 못 낸다’는 말만 듣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통신망 등을 이중으로 설치하는 것까지도 낭비라고 생각하는 증권사 임원이 적지 않다”는 것. 이런 상황이니 해외에서 투자설명회(IR)를 개최한 은행들이 백업센터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곤욕을 치르는 일까지 생기게 된 것이다.
대형증권사의 경우 전산센터를 따로 세우는 데 드는 비용은 300억∼500억원. 하지만 증권사들은 작년에만도 수천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동원증권만 해도 99회계연도(99년4월∼2000년3월)에만 2276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감독당국이 노파심에 권유하고 있는, 돈이 거의 안 드는, 전산실 관리매뉴얼조차 무시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를테면 전산실을 내화벽돌로 짓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조치하고, 소방설비를 갖추고, 경비원을 따로 배치하는 등의 최소한의 권장사항마저 제대로 지키는 곳이 많지 않다. 한 증권사 전산직원은 “‘전산실은 돈은 못 벌어오면서 교육이다, 프로그램 교체다, 사고다 해서 회사 망신만 시키는 부서’라는 증권가의 편견이 불식되지 않는 한 이번의 황당한 사고를 겪고도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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