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수교 10년/인터뷰]아파나시예프 러대사

  • 입력 2000년 9월 29일 18시 56분


예브게니 아파나시예프 주한 러시아대사는 수교한 지 10년 된 한―러관계를 “무에서 유가 창조된 것 같다”고 표현했다. 그는 서두에 양국의 고위 외교당국자가 처음으로 워싱턴에서 접촉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9월30일로 한―러수교 10주년이 되는데 양국관계의 발전과정을 회고해 주십시오.

“1989년 말경 워싱턴에서 당시 러시아의 아나톨리 도브리닌 주미대사와 한국의 이정빈(李廷彬)외무부차관보가 만나 고르바초프―노태우(盧泰愚) 면담을 추진했습니다. 나는 그때 러시아대사관의 참사관으로 역할을 했지요. 지금 그 이정빈씨가 한국의 외교부 장관이고 나는 러시아 대사로 와 있다는 것이 상당한 인연이라고 생각됩니다. 10년간 양국관계는 일정한 성과를 쌓았습니다. 금년만 해도 유엔의 뉴밀레니엄정상회의 기간 중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단독 정상회담을 가졌고 10월 중순경 이한동(李漢東)총리의 모스크바 방문이 결정돼 있는 상태입니다.”

―푸틴 대통령의 방한은 아직 시기가 잡히지 않았습니까. 그분은 전에 한국과 어떤 인연을 갖고 있는지요.

“푸틴 대통령의 방한은 현재 양측 외교당국이 시기를 협의중입니다. 김대통령이 초청해 주어서 감사하게 생각하며 머지않아 꼭 방한할 것입니다. 양측 협의 내용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푸틴 대통령이 와서 서명할 양국간 협정들을 사전조율하는 일이지요. 한―러간에 몇가지 새로운 협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90년대 초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의 간부로서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고 한국에 대해 잘 아는 지한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국의 최대 현안문제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꼭 문제라기보다는 기대수준에 못미쳐서 좀 불만스런 것이 양국의 교역과 경제교류가 아닌가 합니다. 무역수지는 작년까지 거의 균형이 잡혀 있어서 양측이 다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 교역규모 자체가 너무 작은 것 같습니다. 작년의 교역총액이 23억달러에 불과한데 그래서 러시아가 한국의 교역순위 20위를 넘는다는 사실은 불만입니다. 한국기업의 대 러시아 투자액도 2억3000만달러 정도입니다. 어떻게 대(對)러 투자를 늘려갈지 논의해야 합니다. 양국이 97∼98년의 경제위기를 극복했지 않습니까. 이제 미래의 경제파트너 관계를 구체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이르쿠츠크 가스유전의 공동개발인데 얼마전 한국 중국 러시아가 함께 설명회를 가졌지요. 둘째로 연해주의 나홋카 자유무역지대에 한―러 공업단지를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엊그제 연결공사에 착공한 경의선이 개통되면 한국의 유라시아 대륙진출과 러시아 지하자원의 한반도 수출이 원활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의선에 대해서는 중국이 더 좋아할 것이고 서울에서 원산을 거쳐 러시아 연해주로 이어지는 경원선이 복구돼야 러시아가 반기는 것 아닙니까.

“경의선은 우선 중국쪽으로 이어진다고 하지만 한국이 그것을 거쳐 유럽으로 가려면 어차피 러시아를 지나게 돼 있습니다. 경의선과 경원선이 개통돼서 한국과 유럽 사이에 물류가 원활해지면 러시아에도 그 수송비가 떨어지니 모두가 좋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역시 남북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는 남북의 화해협력을 적극 지지합니다. 남북관계가 잘 되면 동북아지역에서 다자간 경제프로젝트가 획기적으로 발전될 겁니다.”

―남북한과 러시아간 프로젝트가 추진되는 게 있으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남북한과 러시아의 3자경제협력에 대해선 7월 푸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3자가 협력해서 북한의 나진선봉 경제특구 개발을 촉진할 수도 있고 또 북한의 기업소들을 재정비하는 프로젝트도 중요합니다. 미래의 국제사회는 경제와 교류가 중심이지요.”

―연해주를 비롯한 극동지역에 자원개발이 활성화되면 러시아내 고려인들이 많이 이주해 올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은 스탈린 독재시절 강제이주정책의 희생자여서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역사적 피해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도 이들의 극동개발 참여를 정책적으로 지원할 수는 없을까요.

“러시아는 스탈린의 개인숭배 통치에 대해 이미 공개비판을 했고 그 역사적인 고난을 극복했다고 생각합니다. 연해주 주지사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 지역에서는 한국어 전공이 가장 인기이며 각계 각분야에 고려인이 진출하는 것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내 100여개 민족은 모두가 평등합니다. 러시아 정부는 극동지역 소수민족이나 외국인에 대해 법규만 준수하면 아무런 제한을 가하지 않습니다.”

▽ 대담=김재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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