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와 스크린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퇴물처럼 여겨졌던 볼펜과 종이가 최첨단 정보통신기술로 무장하고 우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고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타임스가 소개한 이 볼펜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다른 볼펜과 다를 게 없지만 속을 뜯어다 보면 범상치 않은 장치들이 내장돼 있다. 바로 렌즈와 이미지 프로세서, 그리고 정보통신혁명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블루투스.
잉크통 옆에 달린 렌즈는 볼펜 끝이 그려내는 선과 문자를 이미지 프로세서까지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전달된 영상은 이미지 프로세서 내에서 정리돼 내장된 메모리칩에 저장된다. 프로세서는 초당 100개의 이미지까지 처리할 수 있어서 속기를 하더라도 정보를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
핵심기술로 사용되는 블루투스는 무선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메모리칩에 저장된 내용을 근처에 있는 휴대전화기나 노트북PC 등에 보내는데 이용된다. 휴대전화기에 전달된 정보는 자동발신되기 때문에 E메일을 보내거나 전자상거래 결제를 하는 데 굳이 키보드와 스크린이 있는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이 볼펜과 함께 사용되는 종이도 평범한 것은 아니다. 이미지 프로세서가 볼펜 끝이 그려낸 문자를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수많은 도트(dot)가 융단의 표면처럼 촘촘하게 깔려있다는 것이 특징. 여기에 휴대전화기에서 보낸 정보를 되받아 표면에 출력할 수 있는 기능이 덧붙여졌다. 그냥 글자만 쓸 요량이라면 일반 종이를 사용해도 무방한 것은 물론이다.
현재 이 기술을 이용한 제품을 내놓은 업체는 에릭슨, 아노토, 타임매니저 등 모두 세 곳. 이들은 모두 다음해 하반기에 제품을 상용화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특히 아노토사의 제품은 이 회사가 자체 개발한 문서 양식을 사용할 경우 전자결제 등 다양한 분야에 이용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자어 등 자판입력이 불편한 문자를 입력하는 데에도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됐다.
시제품까지 내놓은 업체들이 마냥 장밋빛 전망속에 도취해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 제품이 비즈니스맨들의 필수 액세서리가 될지, 단순히 블루투스 기술을 응용한 흥밋거리로 전락할지 아직까지는 불투명하기 때문.
그러나 타임스는 한가지만은 분명하다고 보도했다. 제품가격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상용화됐을 경우 예전처럼 선뜻 볼펜을 빌려주는 일은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블루투스▼
서로 다른 전자 통신기기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하는 기술을 지칭하는 용어로 최근 정보통신 혁명을 이끌어갈 차세대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10m 이내 반경에서 무선으로 정보를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이 기술은 지멘스 인텔 도시바 모토롤라 에릭슨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에서 개발됐다. 블루투스란 이름은 10세기 무렵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통일한 덴마크의 왕 핼럴드 블루투스의 이름에서 따왔다. 컴퓨터 작업과 통신을 하나로 합치겠다는 블루투스 개발 그룹의 의지가 담긴 이름이라는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