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포스트맨 블루스' 무기력한 인물들의 좌충우돌

  • 입력 2000년 10월 2일 18시 56분


7일 개봉될 일본영화 ‘포스트맨 블루스’는 코미디와 누아르, 비극과 희극을 뒤섞어 발랄하고 감각적이지만 가볍지 않은 톤으로 희망을 말하는 독특한 영화다. 복잡하게 뒤엉킨 등장인물들의 좌충우돌을 뒤따라가며 한참 웃다가도 극장문을 나설 때면 뜻밖에 진지한 질문 하나씩을 가슴에 품게 되는 영화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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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우편배달부 사와키(츠츠미 신이치)는 배달 도중, 야쿠자가 되어 새끼 손가락을 자른 고교 동창 노구치(호리베 케이스케)를 만난다. “30대가 되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느냐”는 노구치의 질문을 생각하던 사와키는 술을 마시며 배달하지 않은 우편물을 뜯어보다 말기 암환자 사요코(토오야마 쿄코)의 슬픈 사연을 접한다. 사요코를 찾아간 병원에서 그는 암에 걸린 킬러 조(오스기 렌)와 만나게 된다. 우연히 야쿠자와 킬러를 만나며 돌아다니는 사와키를, 경찰은 마약 운반책으로 단정하고 뒤쫓는다. ‘탄환 러너’로 데뷔한 감독 사부는 평범한 주인공 사와키가 자신도 모르게 엉뚱한 사건에 휘말려 극적인 삶으로 치닫는 과정을 솜씨좋게 묘사했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무기력하다. 사와키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고 노구치는 겉멋들려 기껏 자른 손가락을 잃어버리고 울상을 짓는 말단 조직원일 뿐이며 킬러 조는 암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린다.

무기력한 일상에 갇힌 이들의 삶에 희망의 출구를 열어주는 이는 말기 암환자 사요코다. 미래를 믿지 않는 사요코에게 사와키는 “내일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한다. 죽음 밖에 남지 않은 삶에도 내일이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기 위해 사와키는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고, 경찰의 대대적 추격에서 죄없는 사와키를 구하기 위해 노구치와 킬러 조도 자전거를 타고 달려간다. 영화에 달리는 이미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사부 감독은 별 말 없이 세 명이 웃으며 함께 달리는 시각적 이미지만으로도 그 어떤 장황한 설명 이상으로 내일의 희망을 역설한다.

이 영화는 딱히 어느 한 장르로 규정할 수 없을만큼 여러 스타일이 혼합돼 있다. 선반위에 가라앉은 먼지처럼 침잠해있던 사와키의 나른한 일상에 대한 묘사로 시작한 영화는 잘린 손가락, 전국 킬러 선수권대회, 미련한 경찰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이리저리 엮어가며 황당한 코미디로 전개되다 비극으로 치닫는가 싶더니 절묘한 해피 엔딩의 톤으로 끝맺는다. 마치 삶에는 죽음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처럼. 15세이상 관람가.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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