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박인배/세계가 함께 즐길 마당극 만들자

  • 입력 2000년 10월 4일 19시 10분


열흘 간의 ‘과천마당극제 2000’ 행사가 1일 끝났다. 올해로 네 번째인 과천마당극제는 마당극이라는 양식을 특성으로 내세움으로써 다른 연극제와의 차별화에 성공했고 또 아파트가 밀집된 주거지역의 연극제라는 특성을 살려 수많은 관객을 쉽게 끌어들였다.

▼ 평화-공존등 보편적 주제 담아야 ▼

마당극은 민족 전통 연희(演戱)의 현대적 계승이란 측면을 갖고 있다. 따라서 과천마당극제는 한국적 연극 양식의 세계화를 가늠해 보는 장이기도 하다. 1, 2회 때 참가했던 콜롬비아공연단의 주선으로 국내 작품들이 보고타의 거리극 축제에 초청됐고 올해는 한국과 콜롬비아의 합동공연도 선보였다.

이런 국제교류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에 의한 색다름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유사점에 의해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기도 한다. ‘장수매 콘도르’로 명명된 이번 합동공연의 준비과정에서 느낀 몇 가지 점을 정리해 보자.

우선 작품 제목을 정할 때 느낀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장수매 설화와 안데스산맥의 콘도르 에 관한 설화가 매우 비슷하다는 점에 감탄했다. 둘 다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마을을 지켜 줄 수호자에 대한 기대를 나타낸 것이다. 어쩌면 먼 옛날 몽골족이 전 세계로 이동하기 전에 갖고 있던 하나의 근원설화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추측에 불과하더라도 평화로운 공동체를 유지하고 싶은 것은 인류 보편의 희망사항임에 틀림없다.

인터넷을 통한 논의 끝에 한국에 온 콜롬비아 ‘타제르극단’과 오랫동안 마당극을 해온 놀이패 ‘한두레’가 합동연습에 들어갔다. 각자가 준비한 장면들을 서로 보여주었다. 콜롬비아 쪽에는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가 돋보이는 대목이 많았다. 반면 탈춤을 기본기로 하는 한두레는 춤적인 동작의 섬세한 표현과 호흡을 멈춘 듯한 사위들로 맺고 푸는 흥청거림을 이끌어갔다. 모든 외국공연단이 감탄해 마지않는 한국의 가을 하늘과 사계절처럼 우리나라 문화의 특색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니 분명하게 보였다. 즉 열대의 강렬한 원색과 우리의 색동무늬가 교차됐다고나 할까.

다음은 사회적 현실을 수용함으로써 생기는 작품의 역동성이다. 두 나라 모두 식민시대를 경험했고 좌우 이념대립으로 양민학살과 내전을 겪었다. 이런 역사적 상황의 유사성은 서로가 표현하는 장면을 이해하는데 언어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학살의 광기가 지나간 후에도 새로운 생명은 잉태된다는 장면은 통역이 다음 장면을 설명하기도 전에 서로가 만들어냈다. 사회현실을 적극적으로 담아내려는 연극운동은 미국의 리빙시어터운동을 비롯해 나라마다 현대 연극의 주요 조류가 돼 있다. 타제르극단도 60년대 남미 민중극운동의 배경을 갖고 있고, 한국의 마당극도 70, 80년대 반독재 민중문화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이상의 몇 가지 점을 바탕으로 마당극의 해외교류에 대해 생각해 보자.

서구 식민문화의 잔재 위에서 새로운 문화침략에 시달리고 있는 나라들로서는 자신들의 민족문화가 해외에 진출한다는 것이 매우 대견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자칫 국수적 민족주의로 비치면 문화교류를 안하는 것만도 못할 수 있다. 인류평화 공존 공영 등 보편적 주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번 과천마당극제에서도 보고타 거리극 축제의 바르가스 예술감독은 공해문제를 다룬 ‘공해강산 좋을씨고’를 눈여겨봤다고 했다.

▼ 해외진출 인터넷이용도 가능 ▼

그렇다면 세계에 내놓을 만한 마당극의 양식적 특질은 무엇일까. 바르가스 감독에게 이번 행사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마지막 날 횃불을 들고 달집태우기를 하면서 참가자가 모두 덩실덩실 춤추며 돌아갈 때”라고 대답했다. ‘집단적 신명’이 표출되는 현장이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수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함께 신명을 낼 수 있는 지역주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과천마당극제가 ‘지역화’에 확실히 성공한다면 세계 곳곳에서 이 모습을 관람하러 올 것이다. 마당극공연단이 해외에 진출할 수도 있겠지만 인터넷시대에 걸맞게 마당극축제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세계화해야 한다.

마당극 정보의 세계화는 지속적인 국제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아직 언어의 장벽은 높고 인터넷 보급률이 낮은 나라가 많다. 하지만 한국과 콜롬비아 연극운동의 성과들이 큰 어려움 없이 하나의 공연을 만들어낼 수 있었듯이 새로운 연극운동의 움직임은 세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박인배<과천마당극제 2000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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