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이 제도를 내년 1월부터 시행키로 사실상 확정하고 대신 1인당 2000만원인 예금보장액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그러나 최근 금융시장의 우려가 커지면서 시기연기까지 포함해 원점에서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진념(陳稔)재정경제부장관은 최근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내년에 부분보장제로 간다는 것은 내년중에는 시행한다는 뜻이며 1월부터 시행할지, 아니면 연내 적당한 시점에 시행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시행시기를 하반기로 연기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2일 기자간담회에서 “당초 계획대로 내년부터 예금부분보장제를 시행키로 확정했으며 다만 예금보장한도 상향조정 등은 계속 검토, 다음주중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재경부는 줄곧 ‘내년 시행’은 ‘내년 1월 시행’을 의미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금융계와 언론도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왔다.
내년 1월 시행을 기정사실화한 채 예금보장액에 대한 막바지 검토를 해온 재경부 실무진은 진장관의 ‘미묘한 발언’에 당혹해하면서도 재검토작업에 착수했다.
재경부는 당초 계획대로 내년 1월부터 시행을 하더라도 예금보장액을 대폭 올리거나 금액별, 금융상품별 보장액을 차등화하는 등 보완장치를 마련할 방침이다.
진장관은 최근 이 제도에 대한 금융시장 불안이 예상외로 큰데다 특히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전직 경제부총리 및 재경부장관과의 오찬 모임에서 참석자중 상당수가 연기를 주장하자 신중론자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경제상황을 감안해 이 제도 시행 연기를 검토하는 것을 무조건 비판하기는 어렵다. 정책변경이 정부 신인도 추락과 예금자 등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조장 등으로 인해 비난받을 수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변경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면 정부가 국민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설득해야 했다는 지적이 많다.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
▼"갈피 못잡겠다" 손놓은 금융권▼
정부가 예금부분보장제와 관련해 불분명한 입장을 보이자 은행 금고 등 직접적인 이해가 걸린 금융권도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곳은 신용금고업계. 이미 예금부분보장제 시행의 여파로 올 상반기에만 1조1000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간 신용금고업계에서는 예금부분보장제 시행이 어떤 형태로 이뤄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신용금고연합회 양희원기획팀장은 “요즘 금고업계는 예금부분보장제 대응에 사활을 걸고있는 상황인데 정부의 입장이 왔다 갔다 해 대응책 수립에 애로를 겪고 있다”며 “금고업계로서는 좀더 준비를 할 수 있게 최소한 6개월 정도 연기하는 게 최선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고업계는 내년부터 예정대로 2000만원 한도 내에서 예금부분보장제가 시행되는 것에 대비해 자체적으로 예금을 추가 보장해 줄 수 있는 기금마련을 준비중이다. 즉 정부에서 보장해주는 2000만원 외에 각 금고가 출연해 만든 기금에서 추가로 2000만원을 자체적으로 보장해주는 것. 그러나 정부의 예금보호한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해질지 결정되지 않아 기금조성 규모나 자체 보호한도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또 예금부분보장제에 대비해 각 금고가 각종 사은품 등을 내걸고 거액계좌를 소액 다계좌로 바꾸는 수신개편작업도 얼마나 강도 높게 추진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은 상태.
은행권도 금고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대응책 마련에 혼란을 겪기는 마찬가지.
한빛은행 관계자는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어차피 예금부분보장제에 대해서는 수동적인 대응밖에 할 수 없다”며 “정부가 빨리 입장을 마련해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은 예금부분보장시에 주로 거액예금이 이동할 것으로 보고 은행별로 전담팀을 구성해 거액예금자를 상대로 일대일 마크를 통해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다. 만약 예정대로 2000만원 한도 내에서 시행이 된다면 전담인력을 좀더 늘릴 계획을 갖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모든 것이 불투명해 다소 관망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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