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죽을 쑤고 있는 미국 나스닥시장이 기로에 서 있다. 8월 한달간 3700선에서 4200선까지 가파른 오름세를 탔던 나스닥지수는 9월에 3550선으로 미끄러져 내린 뒤 10월들어 10일만에 200포인트가량 빠졌다.
9월 22일 인텔의 주가가 실적 악화 전망에 따라 단 하루만에 반토막이 난 데 이어 애플, 오라클, 델컴퓨터 등 주요 기술주들의 주가가 역시 실적 악화 우려로 큰 폭으로 내렸다. 업종별로는 보면 9월초 이후 반도체, 바이오, 소프트웨어, 컴퓨터 등의 업종이 돌아가면서 한차례씩 파문을 일으켰다.
기라성같은 기술주들이 떠나간 무주공산을 점령한 것은 중소형개별주였다. 메릴린치에 따르면 3·4분기에 S&P500지수 구성종목중 시장수익률 이상을 거둔 종목이 전체의 60%로 2·4분기 51%, 3·4분기 33%에서 크게 늘었다.
무엇이 나스닥을 망쳐놓았을까.
대우증권 김영호 연구위원은 “세계경기 둔화, 국제유가 상승, 유로화 약세 등의 대외악재와 이에 따른 기업수익 악화 우려가 가장 큰 요인이며 연초부터 진행중인 기술주의 거품 해소과정도 집요하게 발목을 잡고 있다”고 요약했다.
경기둔화에는 전통가치주도 영향을 받지만 기술주가 상대적으로 더 취약하다는 것이 증시전문가들의 지적. 굿모닝증권 홍춘욱 과장은 “성장기업들은 사업초기 단계에 있으며 주가도 순전히 급속도의 이익성장 기대에 따라 형성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기술주 거품은 여전히 시한폭탄으로 남아있다. S&P500지수나 다우지수 구성종목의 주가수익배율(PER)는 20∼30배임에 반해 나스닥지수 구성종목의 PER는 아직도 127배나 된다.
나스닥지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LG투자증권 임송학 차장에 따르면 나스닥지수의 10일 장중최저치인 3233포인트는 99년 이후의 중기(2년 안팎) 지지선. 임차장은 “주가가 여기서 어느 쪽으로 방향을 트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미 증권가에서는 10일 장 막판에 100포인트 반등한 것에 희망을 거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연초부터 줄곧 낙관론을 펴온 골드만삭스의 애비 코언은 최근 “경기둔화에 따라 당장의 실적증가 속도는 줄어들겠지만 이로 인해 좋은 실적이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3∼4%의 성장률이 유지되기만 하면 기업실적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나스닥시장이 ‘이제 막 실적둔화라는 지뢰밭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모건스탠리딘위터에 따르면 세계경제성장률이 0.1% 떨어지면 전세계 기업들의 평균 이익성장률은 1% 떨어진다. 모건스탠리는 “내년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최근 4.2%에서 3.9%로 떨어뜨렸으나 또다시 전망치를 내려야 할지 모른다”면서 “성장률이 3.5∼3.0%로 하향조정되면 기업이익성장률은 3.2∼7.4%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두가지 시각중 어느 쪽이 맞을지는 일단 다음달 초까지 이어질 어닝시즌(earnings season)에서 가려지게 된다.
일부에선 경기둔화에 상대적으로 저항력이 강한 경기방어주들이 전반적인 장세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한다. 낙관론자인 코언도 제약주, 금융, 에너지주 등 경기방어주를 추천하고 있다. 여기에 가스, 석유정제, 비내구소비재 등의 업종을 덧붙이기도 한다.
한편 대우증권 김현철 선임연구원은 미국 대통령선거 이후의 장세와 관련,△고어가 이기면 환경, 미디어, 금융서비스 업종이 △부시가 이길 경우 정유, 담배, 제약주가 유망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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