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학수/범국가적 기술혁신운동 벌이자

  • 입력 2000년 10월 11일 18시 57분


핀란드는 국가경쟁력을 측정하는 국제기구들의 평가에서 늘 1, 2위를 유지하고 있다. 서방국가들과 구소련 사이에서 중개무역으로 살아가던 그 나라는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엄청난 국가재난을 겪어야 했다.

90년대 초 필자가 방문했을 때 핀란드 의회는 모든 국민의 월급을 반으로 줄이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물가는 엄청나게 치솟았고 버스와 기차에서 본 시민들의 얼굴은 우울증 환자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때 핀란드는 근본적인 기술혁신 없이는 국가파탄을 극복할 길이 없다고 믿었다.

휴대전화를 중심으로 세계 최고의 가전제품 업체인 노키아의 종업원 중 50% 이상이 전문기술인이라는 사실은 이 나라가 얼마나 기술혁신에 심혈을 쏟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툴루즈는 피레네 산맥으로부터 멀지 않은 프랑스 남부 도시이다. 도시 중심에 11세기의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고도(古都)이면서 동시에 외곽에는 항공우주 기술개발 관련 연구소와 대학들이 자리잡고 있는 첨단 기술도시이기도 하다.

지난 여름 그곳을 방문했을 때 프랑스의 현대적 산업기술혁명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샤를 드골은 전쟁이 끝나고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자원빈국이며 단순 농업국가에 불과한 프랑스를 어떻게 하면 미국 독일과 같은 기술대국으로 키울 수 있는 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기술대국을 향한 장기적인 비전을 갖추고 과감하게 추진하는 일이었다. 항공우주기술, 원자력기술, 초고속전철 등 세가지가 프랑스가 추구할 대과제들이었고 전쟁 후 국민의 고통이 심각했지만 빈약한 국가재원을 모두 그들 분야에 쏟아부었다.

지금 프랑스가 세계 최고로 내세우고 있는 콩코드기, 위성제조 및 발사, 원자력발전소, 테제베(TGV)고속전철 등이 모두 드골의 기술혁명을 향한 장기비전의 결과이다.

다시 경제 난국을 맞고 있는 우리는 이제 범국가적으로 근본적인 기술혁신을 시도할 때이다. 다행히 정부 발표에 따르면 내년도 국가예산은 약 101조원으로 작년보다 9.0% 증가한 데 비해 과학기술부의 연구개발비는 17.8% 증가했다. 특히 주요 국가기술 개발을 목표로 한 특정연구개발사업의 경우 22.1%, 기초과학연구지원의 경우 18.1% 증가를 보인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전체적으로 정부예산 중 연구개발에 투자되는 비율이 4.3%에 달해 머지 않아 국가목표로 삼고 있는 5%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한 일은 범국가적으로 ‘기술혁신운동’을 추진하려는 대통령의 결단이다. 드골과 같은 비전과 결단이 너무나 절실한 상황이다. 핀란드가 기술혁신을 통해 국가파탄을 헤쳐나간 지혜를 본받아야 할 상황이다.

정말 근본을 뜯어고치지 않고는 국민의 시름을 덜어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김학수(서강대 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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