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에서도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북한 방문 합의는 당초 예상도 못한 일이어서 북―미관계의 발전 속도를 실감나게 한다. 공동성명에서 밝힌 클린턴대통령의 방북(訪北)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방문 결과나 대통령선거와 관련된 미국 국내정세에 영향을 받겠지만 무난히 일이 성사된다면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공동성명은 또 미사일이나 핵문제 그리고 테러국 해제와 외교관계 설정, 경제협력문제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결론은 내지 않았으나 그 해결 원칙과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같은 두나라 사이의 현안들은 앞으로 여러 차원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활발히 논의될 전망이다.
특히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4자회담에서 논의한다는 원칙을 밝혀 주목된다. 북한은 그동안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고 주장하여 우리의 우려를 샀던 게 사실이다. 북한측이 4자회담에서의 논의를 수용한 것은 통미봉남(通美封南)이라는 기존의 정책을 수정했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6·15공동선언의 실천을 위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문제는 어느 다른 현안보다도 본질적인 사안임에 틀림없다. 남북한 서로가 평화와 안정에 대한 보장이나 믿음이 없다면 진정한 화해와 협력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란은 그런 체제를 구축하는 실질적인 단계로 군사적 신뢰조치가 선행되어야 함을 거듭 강조해 왔다.
그럼에도 북한측은 군사적 신뢰조치에 대해 별로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북한은 이제 미국으로부터 이른바 ‘체제보장’문제에 대한 합의를 끌어 낸 만큼 군사문제에 대해서도 과거처럼 그렇게 민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번 공동성명을 계기로 우리와의 군사문제에 대한 대화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오길 기대한다.
북―미관계의 진전이 남북관계의 진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로 인한 외교적 파장 또한 우리로서는 소홀히 넘길 수 없다. 남북한과 미국 사이에 신(新) 삼각구도가 형성됐기 때문에 북한을 일방으로 해서 유지되어 온 한미(韓美) 공조체제는 어떻게 운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미 관계의 진전은 곧 한반도 주변의 역학관계에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중국 러시아 등 4강에 미칠 외교적 영향도 면밀히 주시하고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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