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친인척 관리' 문제없나

  • 입력 2000년 10월 13일 20시 03분


포항제철 납품업자를 상대로 한 사기극은 권력층의 친인척 관리 문제를 새삼 일깨워준 사건이다. 검찰은 단순 사기사건이라고 결론지었지만 대통령 동생의 비서, 현직 장관의 조카사위 등이 구속됐고 대통령의 조카까지 관련된 점으로 미루어 이 사건은 로비를 하려다 실패한 전형적인 권력형 사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검찰은 엊그제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대통령 동생의 비서 문모씨 등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으면서 포항제철 납품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며 업자로부터 거액을 받아 챙겼다고 설명했으나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단정한 부분이다. 납품업자의 입장에선 해결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돈을 주었을 것이고 그 능력은 다름아닌 권력의 작용일 것이다. 따라서 검찰은 대통령의 동생 등이 관련되지는 않았나 하는 점을 철저히 따져 보았어야 했다. 그러나 검찰은 어찌된 일인지 그냥 넘어갔다.

더군다나 문씨 등은 직접 포철 회장을 만나 납품문제를 청탁했고 이 자리에는 대통령의 조카가 동석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대통령의 조카는 문씨의 권유로 영문도 모르고 따라간 것으로 드러나 조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얘기다. 당연히 소환해 그의 역할과 대가여부 등을 추궁했어야 마땅하다.

설사 대통령의 조카가 직접 개입은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문씨가 청탁하는 자리에 동석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압력을 행사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검찰이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은 것은 이 사건의 배경 을 덮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물론 검찰의 판단대로 주범격인 문씨 등이 주변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일 뿐 대통령의 동생이나 조카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이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그같은 결론을 내린 것은 본분을 저버린 일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취임전 가족 모임에서 절대로 물의를 일으키지 말라 고 당부했고 국민과의 대화 에서도 거듭 엄중한 친인척 관리를 약속했다. 문민정부의 과오를 의식한 다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집권 후반기 접어들면서 권력층의 주변단속이 해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빛은행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기회에 집권세력은 친인척 관리에 잘못이 없는지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도덕성이 떨어지면 정권의 힘도 약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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