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준법감시인제도 첫발부터 '삐끗'

  • 입력 2000년 10월 15일 19시 09분


정부가 금융기관 지배구조개선을 위해 야심작으로 내놓은 ‘준법감시인’제도가 시행초기부터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동안 금융부실의 주원인으로 지적돼온 경영진의 탈법 및 위법행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준법감시인에 내부 임직원들이 임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감사실 경험마저 없고 경영진감시 업무와는 전혀 무관한 영업담당 직원들도 임명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6월 자격요건으로 내걸었던 공인회계사와 학계인사를 비롯한 전문가그룹은 전무한 실정이어서 준법감시인도 사외이사처럼 ‘들러리’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내부 임직원들만의 잔치〓은행 증권 보험 투신 자산운용사 등 금융기관중 외부법률 전문가를 선임한 회사는 거의 없다.

금융감독원은 감시인의 독립성 및 전문성을 보장하기 위해 집행간부(이사대우 이상)급으로 임명하도록 지도함에 따라 많은 금융기관들이 부장급을 이사대우로 승진시키고 있다.

알리안츠제일생명은 재무기획부장을, 대신증권은 서대문지점장과 상품개발팀장을 지낸 인물을 이사대우로 승진시켜 임명했다. 대한 삼성 금호생명은 지역영업본부장을, 대한화재는 대전 중앙보상센터장을 임명했다. 동양화재는 회사고문을 낙점했다.

준법감시인의 주된 임무가 경영투명성 확보 및 사전위험관리라는 점을 고려할 때 금융기관들의 이같은 처사는 정부의 압력을 못이긴 억지인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 KGI증권은 퇴직한 금감원 조사국 직원을 채용해 ‘낙하산 인사’ 의혹을 받고 있다.

▽객관성 기대 어렵다〓금감원은 준법감시인의 임기를 통상 3년으로 하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경영진이 함부로 해고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준법감시인 임기를 마치면 다시 회사임원으로 일해야 하는데 어느 누가 은행장 등을 객관적으로 감시할 수 있겠느냐”며 “고참 임직원들의 자리만 보전해주는 꼴”이라고 반박했다.

또 감사제도는 사후적발 성격이 강하지만 준법감시인은 사전적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내부 임직원으로는 최소한의 객관성마저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준법감시인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효율적인 업무수행을 위해서는 준법감시인이 정기적으로 직무수행내용을 감독당국에 보고하고 내용이 부실할 경우 엄중문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고의나 중과실이 있을 경우 준법감시인도 사외이사처럼 민법상의 책임을 지게 된다”며 “앞으로 검사활동을 통해 감시인의 객관성확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두영기자>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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