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이상승 교수의 진단]자사주 소각 '조삼모사'

  • 입력 2000년 10월 19일 19시 16분


미국의 유명한 야구 선수 요기 베라에 관한 일화가 있다. 베라가 피자를 주문했는데, 웨이터가 그에게 피자를 4쪽으로 자르기를 원하느냐 아니면 8쪽으로 자르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베라는 “지금 배가 많이 고프니까 8쪽으로 잘라 달라”고 대답했다. 미국식 조삼모사(朝三暮四)다.

최근 증시 침체가 계속되자 기아자동차, 삼성전자 등 유수의 기업들이 주가 관리’차원에서 대규모의 회사 자금을 동원하여 자사주를 매입, 소각하고 있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가가 오를까?

6000억원 규모의 기아 자동차 자사주 소각이 알려졌을 때, 모 증권사 부장은 “유통 물량이 18%가량 줄어들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현 주가에서 18%가량 더 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동아일보 9월 22일자) 그러나 이는 오해다. 공급 물량이 축소된 만큼 주가가 상승하는 것은 무상몰수 소각의 경우이지, 배당이나 미래를 위한 재투자를 위해 쓰일 수 있는 회사 자금이 지출되는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년까지 영업하는 기업의 순자산가치가 0원이고, 올해와 내년에 각각 현재가치 100원의 순이익이 예상된다면, 이 기업의 시가 총액은 200원이고, 총 주식수가 2주라면 주가는 100원이 된다. 올해 순이익 100원을 자사주 소각에 지출하여, 주식수를 반으로 줄이면 주가가 2배로 뛸까? 그렇지 않다.

자사주 매입에 100원을 지출해버렸기 때문에 회사가치는 100원이며 총 주식수가 1주이므로 했으므로 주가는 100원에 머문다. 증시에서의 조삼모사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자사주 매입의 효과를 분석한 LG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자본금 350억원 이상인 중―대형주 29개 기업의 경우 매입공시 후 1달이 지나면 시장수익률과 대비해서 0.1%의 초과 수익률을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매입 공시를 한 기업과 안 한 기업의 수익률에 의미있는 차이가 없었던 것.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가 오른다면 그것은 회사의 내재가치가 커졌기 때문이 아니라 투자자들의 착각 덕분이며 효과도 단기에 끝난다. 자사주 매입 그 자체가 호재일 수는 없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