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허갑범/의료 위기를 기회로

  • 입력 2000년 10월 21일 19시 08분


의사의 한 사람으로 의약분업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병원의 진료가 정상화되지 않아 환자들이 불편을 겪고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의약분업은 국민건강을 위해 필요한 제도지만 지난 수십년 간 의사와 약사는 진료와 투약에서 서로 중첩된 역할을 해왔고 국민도 이런 관행에 익숙한 환경에서 단시일에 의약분업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차제에 이러한 의료의 위기를 극복하고 의료의 선진국형 새 틀을 짜기 위한 기회로 삼기 위해 정부와 의료계에 몇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와 의료계는 혼미에 빠진 현 의료사태를 하루속히 정상화시켜야 하겠다. 의사와 약사의 긴밀한 협조가 없이는 의약분업은 성공하기 어렵다. 정부가 현 의약분업을 계속 추진하기 위해서는 완전분업을 위한 합리적인 약사법의 재개정과 의료재정의 긴급 국고지원 등 적절한 의료환경을 조성해야 하겠다.

둘째, 대통령 직속으로 보건의료발전특별위원회를 설치해 낙후된 의료제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개혁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의사인력과 진료수준은 상위급이지만 의료시설과 제도적 수준은 세계 58위라는 기이한 평가가 최근 보도됐다. 이는 현 의료수가가 원가의 80%에도 미치지 못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앞으로 의료보험재정의 조속한 확충, 낙후된 보건의료법의 개정, 왜곡된 의료전달체계 등을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셋째, 의료계도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스스로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의사는 모두 임상진료에만 치중하지 말고 의학연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일본은 이미 3년 전부터 정부가 나서서 9개 의과대학을 대학원중심연구대학으로 전환해 의사인력의 과잉 배출을 억제하는 대신 21세기 의학 생명과학시대에 대비한 우수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우리도 정부와 의료계 주도로 의대 정원을 20% 이상 감축하고 획일적인 의학교육제도를 허물어 의료인력 양성을 다양화, 특성화해야 할 것이다. 임상의사 양성은 지금과 같이 6년제(2+4)를 유지하되 의과학자나 의학관련 법의학, 환경의학, 의료정책, 의료경영학, 사회의학 등의 지도자 양성을 위해서는 일반학부 졸업 후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전문대학원(4+4)제도를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

또 의대 졸업 후 기초의학이나 의과학자가 되려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는 군특례제도를 적용해 21세기의 꽃인 생명과학의 발전을 위해 창의적인 의학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우리도 노벨 평화상에 이어 의학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의료의 현실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의료계는 새로운 마음과 자세를 가다듬어 한국 의료와 의과학의 세계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그리고 이처럼 변화하려고 몸부림치는 의료계에 대해 정부는 적극적인 법적, 재정적, 제도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기를 바란다.

허갑범(연세대 의대 교수·대통령 주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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