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문화재 사랑

  • 입력 2000년 10월 21일 19시 08분


조선왕조실록은 우리가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문화유산이지만 한때 통째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적이 있다. 16세기말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당시 실록을 보관하고 있던 곳은 전국적으로 한양 성주 충주 전주 등 네 곳이었는데 한양과 성주 충주의 실록들이 전쟁의 와중에 화재로 불타 없어져버리고 전주 한 곳만 남게 된 것이다.

▷일본군은 전주를 노리고 가까운 금산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전주의 선비 안의와 손홍록은 그때까지 편찬된 804권의 실록을 지게에 실어 내장산의 한 동굴로 옮겼다. 이들은 1년여 동안 번갈아 가며 동굴 앞을 지키면서 실록을 보존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고 한다. 이들이 없었더라면 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은 후대에 전해질 수 없었다. 전쟁통에도 자신의 안위를 포기한 채 실록을 지켜낸 두 선비의 문화재 사랑이 감동을 준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6·25 때도 있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미술사학계의 원로 진홍섭 박사의 숨겨진 스토리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국립개성박물관장으로 있던 진씨는 미처 시간이 모자라 서울로 옮기지 못한 문화재 10여점을 땅속에 묻어 두고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이 문화재는 고려청자와 석불 등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국보급이라는 게 진씨의 증언이다. 땅속이야말로 문화재를 보관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므로 지금도 개성 땅 어디엔가 유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을 것이다.

▷선조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대하게 되면 우리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문화민족’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적으로는 풍족해졌으면서도 우리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려는 의식면에서는 오히려 전보다 못하다는 데 아쉬움이 남는다. 한가지 예로 국악과 같은 전통 문화는 극소수에 의해 근근히 명맥을 이어가는 형편이다. 얼마 전 풍납토성 보존 문제에서 나타났듯이 개발논리가 늘 문화재 보존논리를 앞서고 있다. 82세의 고령인 진씨의 문화재 사랑이 돋보이는 것은 그와 같이 우리 문화 보존에 헌신적인 의인(義人)을 만나기가 점점 힘들어지기 때문이리라.

<홍찬식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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