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4호선의 1기 지하철 구간이 더욱 심하다고 했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출근시간대만 되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사이에 땀으로 와이셔츠가 젖을 정도. 옆의 여자 승객은 화장이 지워져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을철이면 출근할 때부터 두꺼운 옷을 입고 나옵니다. 지하철 열차의 밀폐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다 보면 자체에서 열기가 나오지요. 그런데 여기에 무작정 난방을 틀어버리니…”
이 때문에 틈새가 열린 차창에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쐬기 위해 차창 옆으로 다가서려는 사람간에 신경전까지 벌어진다. 지하공간이다 보니 퀴퀴한 냄새가 느껴지는 판에 밀폐된 공간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뜨거운 공기로 승객들이 상큼한 출근길을 방해받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출근길에는 한 차량에만 300명 넘게 탑니다. 대부분의 승객은 서울시의 무성의에 짜증을 내면서도 '조금만 가면 되는데…’하는 생각에서 그냥 넘어가지요.”
그가 몇 차례 서울시장실로 전화를 걸어 이 같은 일을 하소연하기도 했지만 항의한 다음날 하루만 냉방이 됐을 뿐 그 이후로는 또 예전으로 돌아갔다.
이와 관련, 그는 며칠 전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을 겪었다.
외국인 5, 6명이 옆에서 자기들끼리 무심코 내뱉은 말이 잊혀지지 않았던 것. 이들은 "지하철 안이 왜 이렇게 덥지. 한국 지하철은 에어컨이 없는 모양이야”라고 비아냥거렸던 것.
미국 뉴욕에서 10년간 생활하다가 6년 전 귀국한 그였기에 이들의 말이 그냥 스쳐 가는 말로 여기기엔 민망할 정도였다. 실제 뉴욕에서는 한겨울에도 출퇴근 시간 혼잡한 지하철 안에서는 냉방을 틀어 환기효과를 살리고 있다.
그는 "서울시가 좋은 시설의 지하철을 운영하면서 승객들 입장에서 조금만 생각하는 세심한 배려가 아쉽다”고 지적했다.
서울지하철공사측은 "기관사들이 재량껏 바깥 기온과 실내 온도를 비교해가면서 냉난방을 조절하고 있다”며 "그러나 불편을 느낀다면 전화(1∼4호선 02―585―2101, 5∼8호선 02―6211―2200)를 해주면 냉난방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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