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현인택/북한과 미국의 파격외교

  • 입력 2000년 10월 24일 18시 33분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의 평양에서의 날들도 역시 파격의 연속이었다. 미국의 실질적인 외교책임자를 맞은 북한은 다시 파격외교로 그 방문의 의미를 극대화하고 있다.물론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북과 그에 이르는 과정도 역시 파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처럼 파격과 파격이 어우러진 올브라이트의 방북에서 미국과 북한은 서로의 중요 관심사 대부분을 심도 있게 논의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번 올브라이트의 방북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방북의 사전 정지작업 같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무엇이 논의되고 결정됐든지 간에 다 발표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북―미회담의 중요성이 감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올브라이트의 방북은 그 역사적 상징성 이외에 어떤 의미와 중요성을 갖는 것일까. 무엇보다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진행돼 온 북한의 변화가 후퇴하지 않도록 붙잡아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북한이 오랫동안의 잠행 끝에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므로 이것이 역행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중요하고 올브라이트의 이번 방북은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의미가 있다.

둘째는 미국 국내정치 일정을 감안해 볼 때 북―미간 협상이 빨라도 내년 상반기에나 이뤄질 것으로 예견됐는데 이것이 앞당겨지면서, 그것도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과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북한문제의 해결을 앞당기는 의미가 있다.

셋째는 클린턴 행정부로서는 어떻게든 임기가 끝나기 전에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의 성과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난조를 겪고 있던 미국의 대북정책을 본궤도에 올려놓은 인물이 윌리엄 페리 전 미국 대북조정관이고, 그에 의해 대북정책의 원칙과 방향이 제시된 페리 프로세스야말로 클린턴 행정부 대북정책의 최대 성과라고 본다면 이런 열매를 클린턴 대통령 스스로 따고 싶다는 생각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왜 이 시점이냐에 대해서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조야에서도 일말의 우려와 조심스러운 걱정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장 중심적인 지적은 미국의 현안 외교문제의 핵심 사안 중의 하나인 북한문제를 왜 행정부가 바뀌는 시점에서 갑작스러운 방법으로 하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실현된다면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의 일일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실상 정상외교는 기본적 방향과 원칙을 선언하게 되는 것이고, 그 실행을 위해서는 또 다시 고위 실무자들에 의한 수많은 협상이 뒤따르는 후속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다음 행정부에 그 업무가 넘어가고 협상팀도 바뀔 공산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현 행정부는 할 수 있는 것 정도를 무리하지 않게 정성껏 하고 다음 행정부에 일을 넘겨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는 것이다.

올브라이트 장관도 바로 이런 점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조지 W 부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기정사실이 될 수 있는 가능성까지를 감안해 북한문제의 극적 타결을 노릴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만약 그 내용이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문제뿐만 아니라 남북문제를 실질적으로 푸는 중요한 것들이 포함되지 않고 형식만 파격이 될 경우 그 여파는 매우 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미국 내에서 새로운 정치적 쟁점이 되면서 답보상태를 걷게 되면 미국의 새 행정부뿐만 아니라 한국도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힘든 노력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올브라이트 장관이 깔아놓은 길을 클린턴 대통령이 밟게 되더라도 이 모든 것이 기우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한가지 간과해서 안될 것은 이 시점에서는 무엇보다도 미국 행정부가 한국과 긴밀한 사전협의를 통해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을 놓고 또다시 미국과 한국이 주도권 다툼 같은 인상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북―미 사이의 길이 열린다고 해서 그것이 남북 사이의 길을 가리는 것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현인택(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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