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사람세상]최규완 삼성의료원장

  • 입력 2000년 10월 24일 18시 57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서울삼성병원 건물안에 있는 삼성의료원장실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오른쪽 책장 위에 놓인 바둑 아마5단 인허증. 소파탁자 위 전화 옆에는 월간 바둑 10월호가 놓여있고 책상에는 바둑 격언인 ‘위기십결(圍碁十訣)’을 오려놓은 종이가 유리 사이에 끼여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 노태우 전대통령 주치의를 거쳐 98년부터 삼성의료원장을 맡고 있는 최규완(崔圭完·63)원장이 이 방의 주인.

바둑은 초등학교 때 3,4급 수준의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그러나 이후 갑작스런 아버지의 타계로 가세가 기울어 고학이나 다름없게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대학 마칠 때까지 제대로 바둑을 둘 여유가 없었다.

바둑을 본격적으로 두기 시작한 것은 인턴 시절부터. 이후 한시도 바둑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다. 바둑도 꾸준히 늘어 전문의를 딸 때 쯤 탄탄한 1급 실력을 갖췄다.

특히 프로기사나 그 가족들을 치료해주면서 이들과 친해졌다. 윤기현 9단, 강철민 8단, 유건재 7단 등과 친분이 두텁다.

윤기현 9단이 “지난해 생긴 농심배나 흥창배는 최원장이 만들어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할 정도로 바둑계에 기여한 공로도 적지 않다.

최원장은 지난해 윤9단을 통해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중단된 진로배를 대신할 바둑대회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바둑에는 문외한인 농심 신춘호 회장을 부추겨 대회를 창설토록 했다. 흥창배도 비슷한 과정을 밟아 만들어졌다.

최원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 바둑은 이창호 9단과의 4점 바둑. 그는 아깝게 한집을 졌는데 바둑 내용보다 국후 이9단이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이9단은 “상대가 아마추어라도 ‘이건 모르겠지’하고 두지 않고 다른 프로기사와 둘 때처럼 ‘정수’로 둡니다. 바둑을 이긴다는 것은 내가 잘둬서라기보다 상대방이 스스로 무너지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는 것.

노전대통령과도 자주 바둑을 뒀다. 주치의니까 당연히 대통령 곁에 붙어있어야 했지만 노전대통령이 3, 4점 상수인 최원장을 바둑 때문에 호출했던 일도 잦았다.

최원장은 바둑의 흑과 백이 대립하면서도 조화롭다는 점에서 젊은이들에게 꼭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갈등과 반목이 많은 사회에서 화해와 조화를 찾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것.

최근 의료계 사태에 대해서도 바둑에 비유해 한마디했다.

“대마 잡고 진다는 말이 있죠. 작은 것을 얻어도 큰 것을 잃으면 안됩니다. 의사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 아무리 큰 성과를 얻어도 대마 잡고 지는 꼴이 됩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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