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 가운데 상당액은 기업 운영자금으로 쓰였겠지만 일부는 정치권이나 금융당국 관계자들에게 로비자금으로 뿌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정씨가 스스로 자신이 대주주인 동방상호신용금고 이경자 부회장을 통해 금융감독원 고위간부에게 수억원의 뇌물을 주었다고 밝혔고 금감원측도 사실상 이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정씨는 이부회장이 다른 벤처기업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금감원 직원들에게 현금 10억원을 건넸고 정치인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불법대출 당사자인 그가 왜 이같은 사실을 폭로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소문이 무성했던 코스닥기업의 변칙 자금동원, 이를 눈감아 준 감독당국의 부패고리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금감원의 조사 결과 정씨가 대출받은 것으로 알려진 514억원 가운데 400억원은 정씨의 계좌에 입금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고, 정씨는 그 돈이 모두 이부회장에 의해 빼돌려졌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조직적인 로비의혹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부회장은 부인하고 있지만 그의 관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벤처기업의 코스닥 등록 등을 둘러싼 감독당국의 비리 의혹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에 드러난 뇌물수수 사례는 우리 사회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법적으로 주식투자가 제한된 금감원 고위간부가 주식을 편법으로 사들인 것은 물론 손실이 발생하자 그 기업 대표로부터 수억원의 뇌물을 받았다니 어이가 없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사건을 감추는 데 급급해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문제의 고위간부가 정씨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을 이미 확인하고도 정씨가 기자회견을 한 뒤에야 마지못해 이를 시인하는 등 석연치 않은 모습을 보였다. 금감원측은 이 사건을 계속 조사중이라고 밝혔지만 당장 중단하고 관련자료를 검찰에 넘기는 것이 옳다.
이 사건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푸는 것은 이제 검찰의 몫이다. 검찰은 동방금고와 대신금고의 불법대출 과정, 금감원 직원들의 묵인 여부, 대출금의 행방 등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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