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또 명퇴" 은행街 뒤숭숭…한빛銀 26일까지 접수

  • 입력 2000년 10월 24일 19시 22분


대규모 인력감축을 앞두고 은행가가 술렁이고 있다.

98년 구조조정 때 많게는 수천명의 동료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은행원들이 또 한번 퇴출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것.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들을 더욱 짓누른다.

경영정상화 대상인 6개 은행 중 가장 많은 인력을 줄여야 하는 한빛은행은 23일부터 나흘간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한빛은 △1, 2급(지점장급) 90명 △3급(지점장 및 차장급) 150명 △4급(과장 및 고참대리) 550명 △5급(행원급) 100명 등 890명을 감축키로 노사가 합의한 상태. 퇴직자는 ‘살아남은 자’들의 임금 반납분을 합쳐 직급별로 13∼24개월치 월급을 위로금으로 받는다.

아직까지 명퇴 신청은 거의 없는 상태. 은행측은 목표에 미치지 못할 경우 호봉별 평균연령, 상벌 등 인사고과, 연수실적, 가족사항 등을 고려해 ‘살생부(殺生簿)’를 만든 뒤 30일 대상자들에게 통보할 계획. 한빛은행 본점이 있는 서울 회현동 부근 술집들은 이날 ‘특수(特需)’에 한껏 기대를 걸고 있다.

이 은행 김영대(金榮大)상무는 “중점 정리대상인 4급의 경우 2년치 위로금을 받지만 신청자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직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감축일정을 대폭 앞당겼다”고 말했다.

한 고참급 대리(4급)는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닐 나이라 돈 들어갈 일이 많은데다 나간다 해도 마땅한 직업을 찾기 어려워 끝까지 버텨보자는 동료들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그는 “98년 퇴직한 많은 행원들도 호구지책으로 보험 세일즈 등에 나섰지만 곧 한계가 드러났다”며 하루라도 빨리 지긋지긋한 감원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랐다.

행원급은 사정이 다르다. 언제 또 쫓겨날지 모르는데 위로금이라도 톡톡히 챙길 수 있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에는 자격미달 명퇴 희망자들의 민원도 끊이지 않는다. 노조 관계자는 “출산을 앞둔 여직원들을 중심으로 ‘위로금을 받고 퇴직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많다”고 말했다.

외환은행은 정규직 430명(비정규직 포함 860명)을 감축해야 한다. 은행 경영평가위원회의 판정 결과를 보고 다음달 초 명예퇴직을 권고할 예정이지만 벌써부터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전체 76명 중 30명(40%)이 퇴직해야 하는 1급이 가장 문제. 외환은행 임원들은 “경험 있는 직원들이 퇴직하면 지점 통솔능력이 급격히 떨어져 금융사고에 약해진다”며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138명을 줄이기로 한 광주은행은 19∼21일 명예퇴직 신청을 받은 결과 148명이 신청해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모 우량은행은 채권추심 자회사를 설립하려다 마무리단계에서 중단했다. 자회사로 인력을 재배치할 경우 200∼300명 정도는 구제할 수 있기 때문에 추후 통합 등에 대비한 ‘쿠션용’이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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