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위 독립적 위상 갖춰야▼
우리 경제는 금융산업의 부실로 인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구조적 위기를 겪고 있다. 110조원의 공적자금을 퍼부었으나 간데 없고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부실채권에 눌려 동반 붕괴를 계속하고 있다. 투자자의 신뢰를 상실한 증권시장은 바닥을 모르고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금융감독원이 비리의 본체로 드러나고 정경유착 비리의 망령이 다시 고개를 들자 연말까지 끝내기로 한 2차 구조조정 계획은 물 건너갔다. 방향타를 잃은 경제는 좌초의 위기를 맞고 있다.
더욱이 우리 경제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벤처산업이 권력형 비리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 3월 280대까지 솟았던 코스닥 시장지수가 80선 이하로 폭락했다. 이런 거품현상은 그동안 끈질기게 제기된 정관계와 벤처기업 유착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당한 벤처기업들은 경쟁력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집단부도 위기에 처했다.
이번 불법대출 및 정경유착 의혹사건에 대해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시급하다. 검찰은 금융감독원 관련자들을 엄벌하는 것은 물론 로비대상이 됐던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예외없는 수사를 통해 신정경유착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과 같이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미온수사로 끝나면 시장경제 자체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면서 경제가 파국으로 갈 수 있다.
향후 권력형 비리의 발생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 금융감독체제의 개편이다. 금융감독원은 98년 효과적인 금융시장 감시를 위해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 4개 감독기관을 통합해 만든 공적 감독기관이다. 당시 통합 금융감독원의 출범에 대해 감독기능의 중립성과 자율성을 상실케 함으로써 구조적 병폐인 관치금융을 오히려 제도화한다는 전문가들의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이 제도는 권력 유지를 위해 돈줄을 놓을 수 없다는 정치논리가 배후로 작용하면서 정부에 의해 강행됐다. 결국 현행 금융감독원은 금융감독이 아니라 관치금융을 하는 금융시장의 황제로 군림하고 2년도 안돼 권력형 비리의 온상으로 변질됐다. 현재의 금융감독체제를 유지하면 정경유착비리는 독버섯처럼 자라고 경제의 밑동을 썩게 할 것이다.
그러면 금융감독원의 개편을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금융감독에 관한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금융감독위원회는 정치권과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위원회로 법적 위상을 설정해야 한다. 위원들은 중립적인 소신을 가진 전문가들을 민주적으로 선임해야 한다. 둘째, 인허가 규제를 대폭 철폐해 시장기능에 의한 금융기관의 적자생존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또 금융감독 기능을 과감히 분산하고 각급 금융기관의 자율감독체제를 강화해 건전성 감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셋째, 통화신용정책 관련 감독업무를 중앙은행에 이관해 금융감독의 조화와 견제를 이루게 해야 한다. 이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중앙은행의 기능을 회복시켜 본연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만드는 일도 된다. 넷째, 금융감독원과 금융기관 종사자들이 도덕적 해이를 불식하고 주어진 개혁의 책임을 다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금융산업 종사자들이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것은 자신은 물론 금융시장과 경제를 무너뜨리는 자멸행위다. 금융인들이 뼈를 깎는 반성과 함께 경제를 살린다는 사명감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야 한다.
▼코스닥 거래 실명화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코스닥시장 정책도 재고해야 한다. 코스닥시장은 정부의 무모한 지원정책으로 지하음성자금이 주도하는 벤처기업들의 도박시장으로 변했다. 건전한벤처기업의육성을 위해 거래 실명화와 선진화 등 시장운영 수술이 불가피하다. 벤처기업은 정경유착 비리를 통해 성장한 과거의 재벌기업들과는 달리 21세기 지식기반산업에 부응하는 새로운 의식에서 발전해야 한다. 벤처인들도 IMF 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던 순수 기업가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필상(고려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