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훈의 급작스런 몰락을 보면서, 젊은 도전자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무리에서 쫓겨나 초원을 배회하는 사자왕의 초라한 모습이 오버랩됨은 왜일까. 조치훈은 20년간 일본바둑의 ‘라이언 킹’이었다. 수많은 도전자가 왕권에 도전했으나 철옹성이었다. 하다하다 안 되자 젊은 도전자들이 힘을 합쳤고 여기에는 아무리 백전노장이라 한들 중과부적이었다.
지난해 7월 조선진 9단에게 4 대 2로 랭킹 3위 본인방(本因坊) 상실, 올 3월 왕리청(王立誠) 9단에게 역시 4 대 2로 랭킹 1위 기성(棋聖) 상실, 그리고 이번에 마지막 남은 랭킹 2위 기전인 명인(名人)마저 상실하고 무관(無冠)으로 전락.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듯 20세기 최고, 최강의 기사로 불리던 조치훈의 퇴진은 아무도 예상 못한, 너무도 창졸간에 이루어진 사건이라 허망하기까지 했다. 조치훈 본인도, 새 명인에 오른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도, 일본바둑계도 미처 실감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할 말이 없다.” (조치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요다)
아무리 지난해부터 극심하게 흔들리던 조치훈이었지만 무관의 벼랑에 몰린 명인전에서마저 이렇게 허망하게 4대 0으로 패퇴할 줄 몰랐다. ‘3연패 후 4연승’을 밥먹듯 해온 역전의 명수, ‘이틀바둑의 화신’으로까지 불리던 조치훈이 아니었던가. 지금까지 7회 승부에서 이렇게 스트레이트로 물러선 예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복귀는 가능할까.
조치훈의 몰락은 나이(44세)에 따른 체력저하보다는 ‘목표감 상실에서 오는 공동(空洞) 현상’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80년 24세의 나이로 명인에 등극한 이래 86년 한때 교통사고(전치 3개월의 중상, 이때의 휠체어 대국은 유명하다)로 무관이 된 적은 있으나 실질적으로 조치훈은 20년 내내 일본바둑의 일인자로 군림해왔다. 더 이상 정복할 대상이 없는 최정상에서의 20년은 승부의 예검을 무디게 할 수 있는 세월이다.
◆ 3개 기전 무기력하게 방어 실패
고바야시(小林光一) 9단 같은 짜릿짜릿한 펀치를 주고받을 수 있는 라이벌이 먼저 쇠퇴하다 보니 자연히 의욕도 식었을 터이다. 조치훈은 싱글을 치는 소문난 골프광이다.
그러나 아무리 체력단련을 위한다고는 하나 일주일에 2, 3일 그린에 나갈 정도면 바둑보다는 골프에 관심이 가 있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공부 패턴도 문제다. 국가간의 경계가 무의미해진 요즘은 바둑정보의 입수가 곧 승패를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 한국이나 중국, 일본의 젊은 기사들은 서로의 정보를 수시로 공유하며 집단연구로 실력을 연마한다.
한국의 충암연구회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천하의 이창호도 여기에서 얻는 것이 적지 않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조치훈에게 상대조차 되지 않았던 조선진, 왕리청, 요다 같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중고신인’들이 괄목상대해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 기사는 이렇게까지 얘기한다. “조치훈이 골방에 박혀 있는 한 컴백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86년 교통사고로 하야(下野)했을 때와는 달리 이번 퇴진은 장강(長江)의 앞물결이 뒷물결에 밀린 세대교체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창호 같은 강력하고도 새로운 영웅 출현에 의해서 하야한 것이 아니라 여러명의 ‘중고 주자’들에게 한순간에 밀렸다는 점과 무엇보다 일본바둑의 정상수준이 그 어느 때보다 약체라는 환경적 조건이 조치훈의 왕정복고를 충분히 예견하게 한다. 문제는, 몰락도 그러하였지만 복귀도 조치훈의 내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정용진/ ‘월간 바둑’ 편집장>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