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주러공사 이범진선생 후손, 율리야 피스쿨로바

"'할아버지’는 진정한 애국자였어요.”

러시아 국립외교아카데미에서 19세기 말∼20세기 초 한―러 관계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율리야 피스쿨로바(30)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

‘할아버지’란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의해 1911년 러시아에서 자결한 대한제국의 러시아 주재 특명전권공사였던 이범진(李範晋)선생을 칭하는 것.

이공사의 아들은 1907년 이준(李儁)열사 등과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황제의 특사로 갔던 이위종(李瑋鍾)선생. 이위종선생은 러시아에 망명해 놀켄 부인과 결혼한 후 러시아 사관학교를 나와 1차대전 때 전사했다. 놀켄 부인은 딸 넷을 남기고 이위종선생이 서거하자 재혼했다. 피스쿨로바씨의 어머니 류드밀라 예피모바(64)는 이위종선생의 외손녀다.

모스크바대 역사학부 출신의 피스쿨로바씨는 논문을 준비하며 어렴풋이 들었던 가족사를 제대로 알게 됐다. 피스쿨로바씨 가족은 한―러수교 후 한국에 있는 이공사 후손과 가끔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피스쿨로바씨는 외교문서보관소를 뒤지다 일제가 외교권을 뺏은 후 대한제국 외교사절을 소환했을 때 고종이 이공사에게 사신을 보내 “귀국하면 생명이 위험하니 러시아에 남아 뒷날을 도모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알아냈다.

피스쿨로바씨는 이공사가 일본의 야욕을 막기 위한 애국심에서 친러파의 길을 택했으나 러시아가 러일전쟁에서 지면서 정치적으로 불우해졌다고 설명했다.

내년 학위를 마친 후 한―러관계사 연구에 전념하겠다는 피스쿨로바씨는 기회가 되면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밝혔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