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 공원을 찾았으나 안개가 짙은데다 비까지 오는 바람에 '신의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산 중턱의 헨리 잭슨 메모리얼 방문객센터를 둘러보며 그같은 아쉬움은 상당 부분 가셔졌다.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는 동양인을 본 공원 관계자가 다가오더니 "비가 와서 유감이지만 3층 영화관으로 가 보시죠”라고 제안했다. 곧바로 마운트 레이니어의 역사와 지질학적 생성 배경, 생태계 등을 상세히 담은 15분 분량의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화관 옆에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에 이곳에 살던 인디언의 삶, 1870년 최초의 정상 등정 당시 장비와 기록, 여성 최초의 등정 장비와 사진, 화산이 어떻게 폭발하며 어떻게 깍아지르는 듯한 골짜기가 형성됐는지에 대한 설명 등으로 박물관이 꾸며져 있었다.
공원 입구 쪽에 1916년 지어진 롱마이어 박물관. 10평 규모의 작은 공간을 둘러보며 어린이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마음대로 만지세요’ 코너를 마련해 이 공원에 살고 있는 동물 비버의 박제 손가락도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방문객을 위한 이같은 배려는 미국의 다른 국립공원도 마찬가지다. 공원 정문을 지날 때면 공원측은 어김없이 공원의 역사 특징 생태계 등을 컬러 사진과 곁들여 상세하게 수록한 2,3종의 팸플릿을 제공한다. 또 공원을 다니다 보면 중요한 지점마다 설명과 그림 또는 사진을 곁들인 해설 표지판을 세워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궁금한 게 있으면 공원 곳곳의 해설가(Interpreter)를 찾으면 된다. 롱마이어 박물관의 해설가 커트 자쿠오씨. 중학교 과학 교사로 일하다 8년전부터 공원 해설가로 전업한 그는 "주로 공원을 찾는 학생들에게 마운트 레이니어 국립공원의 숲에 대해 강의를 한다”며 "1시간 짜리 강의를 위해 이틀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미국 국립공원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을 최대한 원시 상태 그대로 보전하고 대자연을 방문객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해설 기능에 역점을 둔다는 것이다. 영화 '단테스 피크’로 유명한 세인트 헬렌의 화산폭발 현장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올림픽 국립공원 내 '호 레인 포레스트’에 있는 100m 이상 높이의 '국보급’ 고목이 쓰러져도 그대로 놔둔채 이들을 방문객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모두 그런 철학을 배경에 깔고 있는 것이다.
미국 국립공원 제도의 또다른 특징은 익히 알려진 대로 공원 레인저(경찰)가 사법권을 행사한다는 점. 옐로스톤 국립공원 타워폭포 근처를 순찰하던 여성 레인저 애미 핑크씨. 그는 허리에 실탄이 든 권총과 탄창, 페퍼 스프레이, 수갑 등을 차고 있었으며 차안에는 엽총도 있었다.
산과 동물을 너무 사랑하다 보니 레인저가 됐다는 그의 주된 임무는 마약 복용자나 공원 안에서 음주 또는 과속운전을 하는 방문객, 불법 사냥꾼 등을 단속하는 것. 해설가가 자연의 위대함을 방문객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면 레인저는 몇몇 일탈자를 찾아내 엄격하게 사법처리하는 이중구조를 가진 셈.
레인저 6년차인 그는 "아직 총을 쏴 볼 기회는 없었다”면서 "요즘에는 동물에 먹이를 주는 것을 감시하는데 동물이 길들여지면 자연 적응력이 약해지고 캠핑 장소로 내려와 사람을 공격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해설가와 레인저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세 번째로 선호하는 직업이고 이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많은 중고등학교의 과학 생물 지리 등 공원과 관련있는 과목의 교사들이 공원에 매료되어 이직한 경우가 많고 경찰학교(폴리스 아카데미) 출신도 많다. 흑곰의 공격을 받아 얼굴이 흉측하게 망가졌지만 계속 레인저 활동을 하는 '전설적 인물’도 있다고 한다.
미국의 국립공원은 이렇게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지만 문제도 없지는 않다. 여름 휴가철에는 공원 안이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할 만큼 수만명의 탐방객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공원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각 공원은 일부 출입문이나 탐방로를 영구 폐쇄하고 있으며 요세미티 국립공원 등은 공원내 자가용 통행 금지 계획까지 검토하고 있다.
▼ 미국의 국립공원 제도 ▼
1872년 옐로스톤이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미국 국립공원 역사가 시작됐다. 당시 개발업자들이 공원 안의 간헐온천(가이저) 일대를 온천 휴양지로 개발하려다 ‘국민의 재산’이라며 개발을 포기하고 국가에 기증했다고 한다.
이후 1916년 국립공원 관리를 위한 연방정부 내무부 산하 국립공원관리청(NPS)가 설립되기까지 서부를 중심으로 요세미티 마운트레이니어 그랜드캐년 올림픽 등 14개의 국립공원이 잇따라 지정됐다. 이전에는 산림청과 육군 공병대가 한시적으로 맡아 관리했다.
이 과정에서 1892년 설립된 환경보호단체 '시에라클럽’의 초대 회장 존 뮤어 등 자연주의자들이 큰 기여를 했다. 그후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자연보호에 가장 앞장선 것으로 평가되는 테오도르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을 거치며 중부 동부로 확장돼 나간다.
미국 국립공원편람은 "국립공원은 국가가 직접 관리해야 할 만큼 그 경관이 뛰어난 원시적이며 야생적인 상태의 넓은 지역으로 그 보호가 국민 복리와 영감의 향유에 도움이 되는 곳”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라 해마다 국립공원 지정이 늘어나 현재는 380여개에 이른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게리 멀린스 교수는 "토지 소유주나 기업들이 국민 모두가 공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땅을 국가에 기증함으로써 큰 무리없이 많은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운트레이니어〓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 우리나라 공원관리 조언 ▼
우리나라의 국립공원 지정 목적은 크게 두가지. 국민의 휴식처 여행지 또는 레크리에이션 활동지로 ;이용’하면서도 수려한 자연 풍광을 '보호’한다는 상반되는 목적을 갖고 있다.
반면 미국 캐나다 등 대부분의 선진국과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은 "국립공원은 손상되지 않도록 원래의 상태를 보존함으로써 후손에게 잘 전해주어야 하는 자연자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은 이를 위해 '자연환경 해설’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방문객 중심의 국립공원 관리 제도를 택하고 있다. 해설(Interpretation)이란 방문객들에게 단순한 정보 제공 차원을 넘어 그 이면의 의미까지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것.
해설가의 임무는 방문객들에게 공원에 대한 가치를 직접 느끼게 하고 자연 유산의 보호에 대한 필요성을 자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공원측은 이를 위한 다양한 해설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공원의 해설 기능을 더욱 광범위하게 도입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원측은 알기쉬운 시각적 또는 청각적 도구나 책자 표지판 팸플릿 등을 개발해야 한다. 또 자연학습이나 환경교육 체험학습 생태연구활동 등의 서비스를 통해 방문객들이 공원을 효과적으로 탐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조계중(미 오하이오 주립대 박사과정 수료·국립공원 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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