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부터 자금난이 계속됐는데도 급박한 순간마다 대주주인 정몽헌씨는 현장을 버리고 해외에 나가 있었다. 그에게 이보다 더 화급한 일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사재출연 등 본인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산적해 있는데 그는 외국에 있었다.
돌이켜 보면 현대건설의 위기는 지난 92년 정주영 당시 회장이 대선에 출마하면서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기업총수가 회사돈을 사재처럼 정치판으로 빼가는 분위기라면 그 기업이 잘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계열분리전의 현대가 다른 기업에 비해 구조조정에 소극적이면서 막대한 자금수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대북사업에만 기업의 명운을 걸다시피 한 것 또한 오늘날의 사태를 불러일으키는데 작용을 했다는 차원에서 그 저의를 의심케 하는 일이다.
특히 자식들간의 재산싸움인 이른바 ‘왕자의 난’은 이 그룹이 얼마나 전근대적인 경영구조를 갖고 있는지를 국내외에 공개함으로써 스스로 신용등급을 격하시킨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현대건설의 자금난이 바로 이 시기에 시작됐다는 것은 우연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구조조정을 한다고 한 지가 언제인데 막상 대표적 부실기업으로 지목되어 온 기업조차 부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그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의문이다. 우리경제에 치명상을 입혔던 대우사태를 겪은 지 얼마나 됐다고 정부가 그 교훈을 그렇게 쉽게 잊고 재발대비를 하지 않았단 말인가.
수개월전부터 자금시장에서 현대건설에 대한 빨간불이 켜졌건만 결국 부도사태에까지 이른 것을 보면 이 대표적 위험징후에 대한 정부의 감독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대북사업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구나 정부의 책임은 무겁다.
현대건설사태의 여파를 최소화하는 일은 이 시점에서 정부가 수행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 안되는 기업을 억지로 끌고가기보다 과감하게 결심할수록 시장안정에는 유리하다. 정부가 동아건설의 퇴출을 결심하자 주가가 오른 것은 바로 그런 사실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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