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대중문화 째려보기]카리스마의 여왕? 엄정화님께

  • 입력 2000년 12월 1일 18시 31분


마돈나가 스코틀랜드 북부 도노취 대성당에서 결혼을 한다는군요. 새삼 그녀의 나이가 궁금해졌습니다. 1958년생, 우리 나이로 마흔셋이로군요. 'Like A Virgin'을 들었을 때가 1984년이니, 20년 가까이 그녀의 노래와 춤을 보아왔던 것입니다. '진실 혹은 대담(True or Dare)'(1991)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며 'Evita'(1996)의 인상 깊은 연기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악녀에서 성녀로, 말괄량이 아가씨에서 남성중심의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여전사로, 마돈나의 변신은 눈부실 지경이지요. 그런데 마돈나가 서른셋도 아니고 벌써 마흔셋이라니.

여가수들의 나이를 곰곰이 따져보았습니다. '사라'를 부르는 13살 보아로부터 여고생들이 가수로 활동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지요. 이런 와중에도 이은미나 박미경과 같이 서른을 넘기면서까지 현역에서 의욕적으로 활동하는 여가수들이 눈에 띕니다. 1971년생인 엄정화님도 이제 그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군요. 93년에 1집 앨범을 발표하였으니까 햇수로 벌써 7년이 흘렀습니다.

엄정화님의 변신은 97년 3월, 3집 음반 '배반의 장미'부터 시작되었지요. 그후로 올해 발표한 6집에 이르기까지, 매 앨범마다 파격적인 의상과 무대매너, 새로운 창법을 선보였습니다. 소설가인 저로서도 변신의 고통을 잘 압니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이며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이지요. 비슷하게 변주만 해도 기본은 할 수 있다는 유혹을 벗어나기란 얼마나 힘듭니까?

문제는 활동을 접고 다시 활동을 시작하기까지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침묵의 시간이겠지요. 망각의 두려움을 이기고 완벽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서기 위해 보냈을 불면의 밤들이 눈에 선합니다. 악세서리 하나 손짓 하나 시선 하나도 모두 철저하게 준비되고 계산된 것들이지요. 변신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방금 전까지의 자신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4집은 3집을 부정하고 5집은 4집을 부정하는 식이지요. 그러면서 "엄정화는 이건 못할꺼야" 라는 대중들의 불신을 "어, 엄정화가 저것도 하네"로 바꾸는 것이겠지요.

3집에서 5집까지의 눈분신 파격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난 달에 들고나온 6집은 역시! 라는 감탄사 뒤로 약간의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제 그 아쉬움의 한 자락을 펼쳐보일까요?

6집 앨범 제목은 'The Queen Of Charisma'입니다. 앨범 자켓을 보니 엄정화님은 과연 도도하게 여왕처럼 군림하고 있군요. 무대에 나와서 노래를 부를 때도 양손과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고개짓만으로 객석을 내려다보는 듯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오랫동안 준비하고 노력한 결과겠지요. 발표되자마자 인기를 끌기 시작한 타이틀곡 'Escape'를 듣고 뮤직비디오를 보았습니다. 눈빛과 몸짓은 여전히 당당함을 유지하지만, "나를 사랑하긴 했었니 한순간이라도 넌 날 잃은 것 뿐이지만 난 모두 잃은 걸 그래도 나 감사해 그런 사랑에 이젠 어떤 꿈으로 나를 채울까"라고 흐느끼듯 부르는 노래는 처량하기 그지없군요. 이 노래가 어떻게 카리스마의 여왕에게 합당한 지 궁금합니다.

물론 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이는 주영훈님입니다. 그러나 엄정화님이 이 곡을 처음으로 민다는 것은 여기에 어떤 앨범의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6집의 다른 곡들도 마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어디에 카리스마의 여왕다운 풍모가 나타난다는 거지?

카리스마는 무대에서 고개짓으로 대중을 노려본다거나 영국 왕실의 복장을 입고 눈을 치켜 뜬 채 사진을 찍는다고 확보되는 것이 아닙니다. 엄정화님이 뮤직채널에 나와서 특유의 발랄함으로 10대 후반의 풋풋한 웃음을 흘리는 걸 보노라면, 카리스마의 여왕이란 제목은 그저 이번 앨범을 멋지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포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돈나의 골수팬인 제 친구 하나는 엄정화님의 6집 앨범에 대한 저의 아쉬움을 듣고 이렇게 비아냥거리더군요. "어떻게 마돈나와 엄정화를 비교할 수 있냐? 마돈나는 일관된 정신이 있고, 그 정신을 뒷받침할 전략과 자본이 있어. 엄정화는 그저 흉내지. 오늘은 카리스마 어쩌구 하다가도 다음 7집에는 순종하는 소녀로 바뀔 지도 몰라." 그런 핀잔을 들으며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엄정화도 안되면 그럼 누가 해?

엄정화님!

이제 정말 변신을 할 때가 온 것이 아닐까요? 연기자 출신답게 그때그때 음반에 맞춰 겉만 바꿀 뿐이라는 비판을 단번에 비웃을 수 있도록, 7집에서는 엄정화님의 내면(그러니까 정신)을 드러내보이는 건 어떨까요? 카리스마의 여왕이란 타이틀이 부담스럽다면 그건 이은미님이나 박미경님께 넘기고 엄정화다운 엄정화를 보여주는 건 어떨가요?

엄정화님의 새로운 변신을 기다립니다.

소설가 김탁환(건양대 교수) tagtag@kytis.ko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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