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젊은 사냥꾼 아도니스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틈만 나면 몸치장에나 열중했던 여신은 자신도 사냥꾼 차림을 하고 아도니스와 함께 숲을 뒤지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여신이 잠시 하늘에 올라간 사이 혼자 사냥에 나선 아도니스가 멧돼지를 쫓다 엄니에 옆구리를 찔렸다. 숲에 쓰러져 피흘리며 죽어가는 애인의 신음을 듣고 여신이 달려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애인의 몸을 끌어안고 몸부림치며 여신은 울부짖었다.
▷“운명의 신이여. 나의 사랑을 이렇게 앗아가는가. 당신이 그를 데려가지만 완전한 승리는 주지 않으리. 아도니스를 해마다 다시 보게 해 내 사랑과 슬픔의 표적으로 남기리라.”사랑의 여신은 아도니스의 피 위에 신주(神酒)를 뿌렸다. 얼마 만에 그 곳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다. 그러나 꽃의 수명은 짧았다. 바람이 불어 꽃을 피우는가 했더니 이내 또 바람이 불어 꽃잎을 흩날려 버렸다. 바람따라 피고, 바람따라 진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 꽃을 바람꽃, 즉 아네모네라 불렀다.
▷서울과 평양에서 반세기 만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났던 남북이산가족 200명이 엊그제 다시 피눈물을 쏟으며 헤어졌다. 무슨 운명이 그다지 모진지 바람처럼 만난 것도 잠시, 다시 바람처럼 헤어져야만 하는가. 사랑과 한을 가슴에 묻고 살다 연중 몇 차례, 그것도 선정된 소수만 겨우 만나볼 수 있는 이런 식의 ‘바람꽃 만남’은 이제 개선해야 한다. 상설 면회소를 설치해 원하면 언제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 신화보다 진한 혈육의 문제가 아닌가.
민병욱<논설위원>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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