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순만/진료비 지불제를 바꾸자

  • 입력 2000년 12월 3일 19시 43분


의료보험 재정이 파탄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의료보험의 재정문제는 물론 최근에 갑작스럽게 악화한 것은 아니다. 이는 우리나라 의료보험 체계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 것으로 이제는 이 문제에 미봉책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해결하여야 할 때가 됐다.

▼의보료 인상 국민동의 거쳐야▼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보험료를 올리고 그와 동시에 의료서비스가 제공되는 과정의 낭비적 요소를 줄이기 위해 병의원에 대한 진료비 지불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요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보험료 수준으로는 충분한 의료보장을 제공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제한적인 혜택 때문에 실제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때 환자가 직접 지불하는 본인 부담이 매우 높고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재난으로부터의 보호라는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현행 의료보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보험료 인상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따라서 의료보험료 인상은 의료보험 재정 안정과 함께 현재와 같이 제한적인 의료보험 급여를 내실화하여 의료보험의 보장성을 확보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건강보험공단과 정부는 의료보험 재정의 위기 상황과 보험료 인상의 필요성 및 그 혜택을 국민에게 솔직하게 알리고 국민의 동의를 구하여야 한다. 또한 보험료를 인상함에 따라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이므로 특히 자영자 소득 파악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보험료 인상에 따른 저항을 낮추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정부의 재정은 국민이 부담하는 조세로 조달되고 우리와 같은 사회보험체계에서 의료보험료는 이러한 조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문제는 우리나라 조세 체계의 높은 역진성을 고려할 때 과연 보험료와 일반 조세 가운데 어느 것이 경제적 약자에게 부담을 덜 주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의료보험료가 일반 조세보다 경제적 부담의 형평성이 더 높다면 정부의 재정 보조를 통한 의료보험 재정 안정화보다는 의료보험료의 인상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의료보험료 인상 혹은 정부 재정 보조 확대만으로는 의료보험 재정 파탄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동시에 의료보험 재정의 낭비를 가져오는 의료서비스 이용의 비효율성을 줄여야만 한다. 예를 들어 가벼운 감기만 걸려도 동네의원보다는 대형병원을 찾아가기를 선호하는 소비자의 의료시설 이용 행태가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의료 공급자가 소비자의 의료시설 이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의료보험의 재정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의료 공급자에 대한 근본적인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병의원에 의료비용을 사후적으로, 그리고 세분화된 행위별로 보상해주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에서는 의사가 더 많은 의료를 제공할수록 더 높은 경제적 보상을 받으므로 의료비용을 절감할 필요가 없어지고 의료서비스 제공의 비효율성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병의원에 대한 진료비 지불제도의 개편 없이는 의료보험 재정을 장기적으로 안정화하기 어렵다. 또 행위별 수가제는 의료 공급자와 보험공단 사이에 수가 수준에 대한 소모적이고도 지속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병의원에 대한 진료비 지불 방법을 바꾸지 않은 채 수가만 인상하는 것은 보험재정의 악화를 더욱 가속화할 뿐이다.

▼행위별 수가제 비효율적▼

의원과 병원에 대한 진료비 지불은 좀더 포괄적인 지불 단위에 대해 지불이 가능한 비용을 미리 결정해 줌으로써 의사로 하여금 환자 치료의 비용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새로운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환자의 진단명에 따라 의료비를 미리 결정하는 진단명 기준 포괄 수가제도(DRG), 주치의에게 등록된 환자 1인당 비용을 지불하는 인두제, 일정 기간의 의료비 총액에 상한을 두는 총액예산제도 등으로 진료비 지불제도를 개편한 외국의 경험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국민은 보험료 부담을 늘리고 의사 역시 의료체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의 변화를 수용해야만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는 재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권순만<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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