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식의 아프리카 문화기행]나미비아

  • 입력 2000년 12월 4일 14시 50분


◇ 독일 냄새 물씬 나는 동물의 낙원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도 나미비아(namibia)만큼 아프리카답지 않은 나라는 본 적이 없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 산다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유럽 관광객들이 많고 영국식 교육으로 그나마 잘 정비되어 있다는 짐바브웨에서도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다. 시내의 한 골목이나 시골 마을 등 어느 구석에선가는 널브러지고 헝클어진 ‘아프리카다운 모습’을 찾아 낼 수 있었던 탓이다. 사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나미비아 입국 비자를 신청할 때부터 나미비아는 심상찮았다.

바로 며칠 전 비자를 받았던, 이웃 나라인 보츠와나 관광청의 너스레한 흑인 사무원은 시간도 지키지 않을 뿐더러 며칠 뒤에 오라며 계속 시간을 끄는 수법으로 웃돈을 요구하여 비자 신청자를 애먹였다. 그러나 나미비아 관광 사무실은 참으로 정확했다. 말단 직원인 흑인 여사무원은 거만함이 하늘을 찌르고 “왜 나미비아에 가느냐”며, 마치 그곳에 불법으로 살러 가는 사람처럼 나를 대했다. 체류할 날짜에 대해 여유를 두고 비자를 내주는 것이 보통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체류 날짜를 정확하게 여권에 기입했다. 비자 비용도 ‘국제 송금’을 통해 자기 나라 은행에 입금하고 그 영수증을 가져와야만 비로소 비자를 내주는 치밀함을 보였다.

인종 차별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무표정하며 딱딱한 어조로 깔보듯 이야기하는 모습에 차라리 안 가면 안 갔지 이런 대접은 못 받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권을 집어던져버리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나미비아에 도착해 며칠이 지나면서 그들의 그러한 태도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들은 그냥 아프리카인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정확하고 정결하기로 이름난 독일식 아프리카인이었던 것이다.

시골역 같이 작지만 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서비스가 좋은 빈트호크(windhoek) 국제공항의 헤르츠에서 닛산차를 렌트해 수도인 빈트호크로 향할 때 첫번째 사건이 터졌다. 빈트호크 국제 공항은 황무지에 자리를 틀고 있어서 시내로 들어가기까지는 황무지가 끝없이 이어졌다.

가는 길에 하도 급하여 잠시 차를 세우고 소변을 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차들이 약속이나 한 듯 헤드라이트를 켜고 클랙슨을 울려대는 것이 아닌가. 한참이나 그 영문을 몰랐는데 알고 보니 왜 길가에서 소변을 보냐는 것이었다. 정말 황당한 일이었다. 솔직히 아프리카에서는 어느 곳에서든 편하게 소변을 볼 수 있다. 실제로 다른 나라의 경우 이런 자연 속에서 볼일을 본다고 해서 손가락질을 당한 경우는 없었다. 이런 모습에 “여기는 독일이야, 독일”이란 말이 저절로 나왔다.

나미비아에는 흑인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부터가 오류였다. 과장된 표현으로 하면 백인을 보는 것이 더 쉬울 정도였다. 나미비아는 영국, 독일과 남아공에 의해 통치되고 그 중에서 독일의 영향이 가장 많이 남아 있어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독일과 흡사했다.

◇ 질서와 자연의 조화… 영양·기린 등 도로에서 뛰놀아

첫번째 행선지로 잡은 곳은 빈트호크에서 북쪽으로 400여km 떨어진 에토샤 국립공원이었다. 가는 길에 펼쳐진, 사막도 아니고 광야도 아닌 그 중간 지대 같은 곳에 붉게 지는 노을은, 이런 것을 위해 아프리카를 다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감히 사진이나 영화로는 전달할 수도 없을 자연의 숭고함이 자동차 앞에 펼쳐졌다.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에는 고슴도치 가족이며 영양, 기린 등 동물 무리가 시도 때도 없이 도로로 뛰쳐나오기 때문에 운전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 도로의 속도제한은 사람의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물을 주의하라는 표지판이 곳곳에 배치되어 경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직선으로 끝도 보이지 않게 뻗은 도로를 쉬엄쉬엄 달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에토샤 국립공원 내에서도 동물의 출현은 예측을 불허했다. 불쑥 타조가 나타나 텀벙텀벙 그 큰 몸으로 도로를 횡단하는가 하면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느릿하게 나뭇잎을 훑던 기린이 길을 막아서기도 했다. 앞에 선 기린의 도톰한 혀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어버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에토샤를 나와 다음 행선지로 웰비스 베이(walvis bay)를 선택했다. 수도에서 서쪽으로 290km 떨어진 대서양 변에 위치한 대도시 스와코문트(swakopmund)에서 웰비스 베이를 지나 몇 킬로미터 남쪽에 위치한, 수천 마리의 홍학이 산다는 샌드위치 베이(sandwich bay)로 가는 길에서 만난 나미브 사막의 경이로움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건조 지대에 생긴다는 사막이 바다와 근접해 있어 왼쪽에는 사막을, 오른쪽에는 바다를 끼고 도로가 나 있다는 사실은 작은 충격이었다. 그 바다 위로 수천 수만 마리로 보이는 홍학(플라밍고)들이 무리를 지어 날기도 하고 얕은 물에서 먹이를 구하기도 했다. 입과 다리가 붉은 홍학들이 노을지는 하늘과 푸른 바다와 함께 어울린 모습은 결코 잊지 못할 광경이다.

홍학 서식지 사이로 난 길과 바다가 만나는 즈음에서는 거대한 소금산이 버티고 있었다. 넓은 바다에서 천연으로 만들어진 소금을 거대한 산처럼 쌓아 놓았는데, 이 천연 소금은 많은 아프리카 나라들에 수출되고 있다고 한다.

스와코문트에서 북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물개보호구역 케이프 크로스(cape cross)에서 또 하나의 황홀한 광경을 만났다. 바닷가를 까맣게 덮고 있는 물개들. 1미터도 안 되는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 무리를 지어 있는 물개들은 무엇이 그리 불만인지 연신 소리를 질러대고 새끼나 어미나 할 것 없이 자리다툼을 하며 일광욕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홍학떼들이 있는 곳이나 물개들 서식지 어느 곳에도 이들을 돌보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또 어떤 누구도 관광객에게 물개나 홍학 곁으로 다가서지 말라고 경고하거나, 음식을 주지 말라거나,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참견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곳에서 그런 상식에 벗어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이것이 나미비아의 힘이 아닌가 싶다.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길을 몰라 공사중인 곳으로 차를 잘못 달렸다가 출구에서 여지없이 스티커를 발부받아야 했던 일이나 길가에서 소변을 보면서 질타를 받아야 했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나미비아는 서로 질서와 상식을 지키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에게는 친절을 베풀지만 질서를 깨거나 상식에 벗어난 행동을 하면 엄한 경고나 질타를 서슴지 않고 틀림없이 그에 준하는 벌을 가하는 나라다. 그래서 어찌 보면 정이 없는 듯 보이기도 하는 곳이 바로 나미비아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나미비아를 떠나면서 마지막까지 가슴에 간직한 그들의 모습은 다른 아프리카 나라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정직함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었다.

<글·사진/ 전화식(Magenta International Press) magenta@kornet.net >

(주간동아 제2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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