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대형 건설업체들의 잔칫상으로 여겨졌던 서울 재개발 재건축 시장에서 중소업체들이 잇달아 공사를 따내고 있다. 대형 건설업체의 퇴출 이후 소비자들이 업체의 내실을 따지면서 중소업체의 견실함이 대형업체의 ‘이름 값’을 압도하면서 나타난 변화다.
우림건설은 최근 서울 강서구 방화동 건우아파트 재건축을 위한 조합원 총회에서 S, D사 등 재벌 계열 건설업체를 제치고 공사를 수주했고 지난달 3일에도 마포구 망원동 장미연립 재건축 공사를 따냈다. 연매출 1000억원 정도인 이 회사가 9월 이후 L, D, S사 등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대형업체들과 경쟁해서 따낸 공사는 모두 1000여가구나 된다.
주택시장에서는 후발주자인 포스코 계열의 포스코개발도 10월 강남구 대치동 동아아파트 재건축 공사를 수주하며 재건축 시장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수화학 계열의 이수건설도 6월 행당 3구역 재개발 공사를 따내는 등 올들어 모두 1442가구의 재개발 재건축 공사를 확보했다.
이처럼 중소업체들이 재개발 재건축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원인은 대형 건설업체들이 잇따라 자금난 등을 이기지 못하고 부도를 내면서 쓰러지는 것을 본 소비자들이 회사의 외형보다는 내실을 따지기 시작했기 때문.
포스코개발 관계자는 “부채비율이 59%에 불과할 정도로 견실한 회사 사정이 알려지면서 일부 재건축 조합원들이 먼저 공사를 해달라고 요청해 왔다”고 귀띔할 정도.
대형업체에 비해 중소업체의 공사비가 저렴한 것도 수주를 가능케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올해 서울에서 모두 8곳의 재건축 공사를 따낸 월드건설의 이진백 차장은 “대형업체보다는 시공비가 평당 10만∼15만원 남짓 싸 주민들이 싼 값에 집을 다시 지을 수 있다는 점을 집중 홍보한 게 수주 성공의 비결”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같은 중소업체들의 ‘반란’이 얼마나 계속될까. 이에 대해선 일시적이라는 주장과 주택시장의 지각변동을 알리는 시작이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일시적이라고 보는 측은 “재개발 재건축 시장의 경우 선투자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에 중소업체들이 동시에 여러 개의 사업지를 갖는 것은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따라서 건설경기가 회복될 경우 다시 대형업체를 중심으로 시장이 정리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라고 보는 쪽은 전국의 주택보급률이 95%에 육박하면서 주택시장이 공급자 위주에서 소비자 위주로 전환하는 데 따른 불가피한 변화라고 강조한다.
대량 생산 체제에 길들여지면서 방만한 경영을 해온 대형건설사보다는 소량 다품종 생산 위주로 내실을 기하는 중소업체들이 시장을 선도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
우림건설 노승기 전무는 “완공 후 같은 품질이라면 대형업체가 지은 아파트가 중소업체 아파트보다 매매가가 높게 형성된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었지만 앞으로 중소업체들이 꾸준히 내부 마감재나 단지 배치, 설계 등을 고급화하면 시장 양상은 바뀔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은우기자>libr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