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국가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학력을 높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람들과, 사교육은 학생들의 적성을 말살하고 사회계층간 불평등을 고착시키므로 과외해소가 최우선 교육정책 과제가 돼야 한다는 사람들의 대립은 옛날부터 있어왔다. 교육당국은 그 사이에서 여론의 눈치를 봐가며 수시로 제도를 바꿔왔기 때문에 입시제도는 일관된 방향없이 양극단을 오갔던 것이다.
더욱 답답한 일은 이번에도 수많은 토론과 논쟁이 있었지만, 양 진영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릴 뿐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의견수렴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기보다 “이렇게 돼야 한다”는 당위성만 내세운 교조적 주장이 주를 이뤄왔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에서는 서로 다른 주장이 대립할 때 우선 검증할 수 있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실험적 사실부터 확인한다. 이렇게 합의된 객관적 사실로부터 출발해 서로 의견이 다른 학설의 적합성을 따지는 단계로 나간다. 그러기에 논의가 발전할 수 있고 현실에 기초한 합리적 결론의 도출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의 교육에 대한 논의는 실사구시적 접근이 결여돼 서로 각자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한 채 수십년을 허송해왔다.
가령 빈부 차이에 의한 교육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하는 것은 당위다. 그러나 수능을 쉽게 내는 것이 이런 당위를 구현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수능이 쉬워서 실제로 과외가 줄었는지에 대한 객관적 자료는 없다. 학생들의 교육이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도 당위일 것이다. 그러나 쉬운 수능이 얼마나 학생들의 학력을 저하시켰는지, 그 정도가 국가 경쟁력을 저하시킬 만큼 심각한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 자료는 없다. 이처럼 각 주장의 핵심 근거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없기 때문에, 서로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게 되고 논의가 평행선을 달리는 것이다.
이제 소모적 논쟁은 지양하는 것이 옳다. 자기 주장이 여론의 우위를 점하도록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거나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일도 그만둬야 한다. 대신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를 축적하고, 그 토대 위에서 건설적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교육당국도 여론의 향배에 따라 어설픈 교육개혁안을 내놓는 것보다 객관적 자료를 마련하는 것이 교육의 백년대계를 위해 훨씬 도움되는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오세정(서울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