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워 게임' 어디까지 왔나]총 대신 마우스

  • 입력 2000년 12월 10일 18시 09분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악은 포탄의 탄도를 계산했다. 휴대전화는 군용 무전기의 원리를 민간에 적용한 것이었다. 인터넷도 역시 처음에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개발됐다. 60년대말 미 국방부는 구소련의 핵공격으로 통신중추가 마비될 경우에 대비해 인터넷의 시조인 ‘알파(ARPA: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넷’을 만들었다.

미국과 소련은 컴퓨터의 뛰어난 능력을 이용해 ‘진짜같은’ 전투상황을 만들기 시작했다. 피를 흘리지 않고 전투경험을 얻기 위해서다. 냉전시대 내내 끊임없이 전쟁을 치른 이들은 풍부한 실전경험을 컴퓨터에 입력했다. 시뮬레이션은 인명사고나 대규모 기동훈련을 막대한 비용 없이 ‘체험’하도록 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미국은 CBS(Corps Battle Simulation)란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한국군 역시 70년대 워게임 기술을 도입해 BCTP(Battle Command Training Program)를 운용중이다. 지난해에는 한국형 워게임 ‘창조21’이 개발됐다.

군에서 활용하던 시뮬레이션 훈련은 전략시뮬레이션이란 이름으로 상용화되었다. 최근까지 게임 기술자들은 군대의 ‘워게임’ 모델을 연구하고 모방했다. 90년대 초 냉전이 끝난 이후 많은 군출신 기술자들이 민간기업에 흘러들어가자 게임은 전장의 모습을 더욱 리얼하게 그려내기 시작했다.

발전을 거듭하던 민간의 게임기술은 90년대 말부터 군에 ‘역수출’됐다. 군대가 민간기술 수입에 나선 것은 게임과 군사용 시뮬레이터에 사용되는 기술에 공통점이 많고, 발달속도가 빠른 민간 컴퓨터기술을 채택하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또한 민간 게임은 대부분의 군 시뮬레이션이 갖추지 못한 멀티미디어와 3차원, 인공지능 같은 첨단기능을 갖추고 있다.

국내 게임개발 업체인 타프시스템은 6월 3차원 포병 훈련 시뮬레이션 ‘풍익모델’ 개발을 완료했다. LG―EDS 등과 공동개발한 이 모델은 작전지역 지형을 위성으로 찍은 뒤 입체영상으로 만들었으며 눈 비 안개 등 다양한 기상상황도 재현할 수 있다. 적군의 동태와 적 전차의 공격형태 등이 3차원 영상으로 나타나며 포탄 탄착지점과 적 피해 등 전장 상황을 즉각 확인할 수 있다. 타프시스템은 낚시를 소재로 한 PC게임 제작에서 얻은 기술을 ‘풍익모델’에 적용했다. 미국의 마이크로프로즈는 게임 엔진을 군사용으로 납품하고 있기도 하다.

올 3월 미군은 분대단위 훈련에 PC게임인 ‘델타포스2’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미군은 보스니아에서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 게임이 파견지 주민과의 접촉과 기후, 풍속 등 교전 이외의 상황까지 구현하도록 변형작업을 진행중이다.

게임을 너무 사실적으로 만들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비행 시뮬레이션 ‘팰콘4.0’은 한반도 가상전쟁을 주제로 한국의 지형과 공군의 전술을 너무나 흡사하게 재현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일반에 시판이 금지되고 있다(물론 할 사람은 다 한다). 대신 대한민국 공군의 공식 훈련장비로 채택돼 있다.

앞으로 전쟁(군)과 게임(민간)의 기술적 접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타프시스템의 이효래 이사는 “현재 시판되고 있는 게임 중 다수가 군용 데이터만 입력하면 군사용으로 전용할 수 있을 정도”라며 “올초 일본에서 일어났던 ‘플레이스테이션 군사전용 가능성’ 논란이 앞으론 PC게임 분야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도움말〓디펜스코리아·www.defence.co.kr 서정범 대표)

<문권모기자>afric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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