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2시간 후 같은 자리에 돌아와 흰색 분필칠이 남아 있는지를 확인한다. 시간을 초과한 불법주차 차량에 요금을 고지하기 위해서다.
로드리게스는 히스패닉이다. 밸리지역에서 히스패닉은 전체 인구의 24%.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률은 백인이 86%, 아시아계가 97%인데 반해, 히스패닉계는 57%에 불과하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진학률도 23%로 이 지역 평균 47%에 크게 미달한다. 히스패닉계는 밸리의 대표적인 저소득계층이다.
로드리게스는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비싼 집세와 물가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수년 전부터 여기를 떠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좋은 교육환경과 정책당국의 세심한 배려가 그를 붙잡고 있다. 세 아이의 학비는 공짜이고 지난달에는 첫째 아이의 산타크루즈 과학캠프 참가비 250달러를 공동체 교육지원 프로그램이 지원해주었다.
실리콘밸리에는 세계 최고의 대학이 있고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오늘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벤처기업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이들의 성공은 단기간에 많은 갑부를 탄생시켰고, 이 지역 임금수준을 미국 평균의 1.6배에 해당하는 년 5만3700달러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그 혜택이 로드리게스에게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실패에 너그럽다. 그러나 위법에는 매정하다. 차바퀴에 분필칠이 남아 있는 이상, 벌금고지서는 예외없이 발부된다. 예외없는 법집행은 로드리게스의 가장 큰 보람이기도 하다.
실리콘밸리 정책당국자들은 제2, 제3의 로드리게스 집배원과 청소원 등을 붙잡아 두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실리콘밸리가 뿌리내린 경제사회질서의 기반을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유난히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고 실행에 옮기는 많은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실리콘밸리의 밝은 미래가 떠 올랐다.
장석권<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스탠퍼드대 교환교수> changsg@stanfor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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