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무리하게 은행합병을 추진하고 있어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공적자금을 쏟아부어야 하는 부실은행은 정부가 개입해 조속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당연한 일. 그러나 자생력을 가진 은행에 대해 정부가 나서는 것은 원칙에도 어긋나며 효과도 없다는 지적이다. 또 합병을 둘러싸고 혼란이 장기화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의 자금난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정부 왜 은행 합병에 매달리나〓이근영(李瑾榮)금융감독위원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세계 50위권의 대형 우량은행이 있어야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기호(李起浩)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도 “합병을 통한 시너지효과를 통해 경쟁력 있는 은행으로 거듭나야 기업 금융 구조조정이 마무리된다”며 “은행 자율에 맡길 경우 합병이 제대로 이뤄질 가능성이 없어 정부가 부득이하게 나서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금감원 정기홍(鄭基鴻)부원장도 “은행합병 등을 통한 구조조정은 기업 금융개혁의 마무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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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반론〓진념(陳稔)재정경제부장관도 인정했듯이 ‘우량은행끼리 합병하는 것은 해당은행의 주주가 결정할 사안’이다. 한 증권사 사장은 “정부가 은행합병에 집착하는 것은 재임 동안에 한 건 하겠다는 업적주의에 따른 것일 뿐 실익이 없다”고 혹평했다. 정기영 삼성금융연구소장도 “부실은행 정리가 더 시급한 일이며 정부가 우량은행 합병을 주도하는 것은 금융불안만 가중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관계자도 “지금 해야할 일은 금융시스템을 복원시킴으로써 기업자금난을 해소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합병효과 있나〓신인석 한국개발연구원수석연구원은 “서로 좋아서 합병을 해도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우량은행은 정부가 억지로 밀어붙여서는 절대 안된다”고 말했다.
한미은행 관계자는 “국민+주택이든, 외환+한빛이든 현재 하고 있는 업무가 비슷하기 때문에 합병하더라도 추가수익을 낼 수 있는 여지는 크지 않다”며 “노조반대로 직원 감축도 쉽지 않아 합병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노조문제〓부실은행 처리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노조. 현재 부실은행 노조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다 정부가 우량은행 합병문제를 들고나오는 통에 노조 문제는 더욱 복잡하게 꼬이는 형국.
신 연구원은 “정부가 은행권의 모든 노조를 상대로 싸움을 걸며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며 “이러다가는 자칫 부실은행 처리마저 지연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금융불안으로 기업자금난 가중〓중견 대기업 K 자금부장은 “연말 결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 은행 저 은행 열심히 찾아다니고는 있으나 담당자들이 은행합병에만 관심을 나타낼 뿐 대출상담에는 뜻이 없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도 “은행 합병논의가 지속되면서 은행권이 혼란에 빠졌다”며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연말 자금대책이고 기업구조조정이고 모두 도루묵이 될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코메르츠방크대변인 "외환銀 지주회사 편입 아직 결정 안나"▼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독일 코메르츠방크의 데니스 필립스 대변인은 13일 본사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외환은행의 정부 주도 지주회사 편입문제와 관련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 정부가 서두르고 있는데 언제까지 결론을 낼 생각이냐.
“아시아태평양지역 투자를 담당하는 위르겐 레머 전무가 한국을 방문한 지난주 초 한국 정부로부터 이 안건을 제안받았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사안을 결정해야 할지 시한을 갖고 있지 않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매주 화요일 최고경영자회의가 열리지만 꼭 여기서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주요 임원들이 모여 언제든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검토단계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정부의 제안에 대한 코메르츠방크의 입장은….
“판단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외환은행이 튼튼해질 수 있고 주주로서 투자한 부분을 보장받을 수 있느냐는 점이다. 만약 정부 주도의 지주회사에 편입해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결정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만약 받아들일 경우 한국 정부에 대한 요구조건은…. “그 문제는 외환은행 경영진과 협의를 해봐야 하지만 아직 논의하기엔 이르다.”
<박현진·김승련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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