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칼럼]여야, 간신들 쫓아내야

  • 입력 2000년 12월 13일 18시 35분


여당과 야당이 보여주는 모습은 한마디로 한심스럽다. 헌정 반세기에 걸쳐 우리 국민이 정당에 대해 희망을 걸어 본 때는 거의 없다시피했지만, 그래도 새 세기 새 천년대에 들어선 만큼 혹시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신선한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기는커녕 구태의연한 패거리싸움이나 공작정치의 냄새를 계속 풍겨줄 뿐이어서 짜증스럽기만 하다. 그렇지 않아도 점점 심각하게 어려워지는 경제여건에 좌절하거나 두려워하는 수많은 서민들은 분노마저 느낀다.

▼직언한 사람 매도 안될말▼

우선 여당을 보자. 이름을 새천년민주당이라고 붙였을 때는 새로운 밀레니엄에 맞게 당을 운영해 보겠다는 뜻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벌어진 친권파와 반권파 사이의 이른바 권투(權鬪)를 본 국민의 입에서는 옮기기 민망할 정도의 험한 표현이 쏟아져 나온다. 지금 국가경제의 형편이 얼마나 어렵고 국민생활의 기반이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 때인가. 그렇기에 여당은 잘못된 부분은 도려내면서 밤을 새워가며 나라살림을 살려내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런데도 희망을 주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으니 얼마나 실망스러운가. 대통령 앞에서 직언한 사람을 당 사무처의 직원들이 매도하는 데모마저 매일 벌이니, 그렇다면 언로를 아예 봉쇄하겠다는 것인가. 그렇게 언로를 봉쇄하다 보니 당 지도자들이 세상 물정에 어두워져 시장에 나가 상인들로부터 ‘밑바닥 여론’을 들은 뒤에야 비로소 “민심이 이렇게까지 나빠진 줄 몰랐다”고 탄식하기에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동교동 가신 그룹의 회동 장면은 민주당이 본질에서는 붕당에 가까움을 다시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서울경찰청장의 중도하차도 결코 한 개인의 ‘허위 학력기재 사고’가 아니다. 이 정부가 들어선 뒤 상식을 뛰어넘은 고속승진과 무리한 기용의 배경에는 바로 구시대적 패거리정치의 폐습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아닌가. 역대 정권들도 저질렀던, 지연과 학연에 바탕을 둔 제 사람 심기, 제 패거리 키워주기가 그것을 맹렬히 비난했던 이 정권에서도 그대로 재연된 것이다. 그나마 재빨리 퇴진시켜 다행스러운데, 문제는 이번 일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믿음을 많은 국민에게 심어주었다는 데 있다. 도대체 그의 배후 지원세력은 누구인지를 국민은 묻고 있다.

야당이라고 해서 국민적 실망의 예외는 아니다. 솔직히 말해, 한나라당이 1당이 된 것은 정책적 대안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반DJ 또는 지역패권주의에 힘입은 것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정부 여당의 일은 무조건 발목 잡는 방식에서 벗어나 훨씬 더 진지하게 국정에 임해야 옳다고 하겠다.

그런데도 이번에 드러난 한나라당의 ‘대선 문건’이란 도대체 무슨 짓인가. 2년 뒤의 대통령선거에 대비한, 차기 정권장악 시나리오로 해석되는 이 문건에 따르면, ‘예상 상대후보 관련 비리자료 축적, 네거티브 홍보논리 개발’에 ‘적대적 집필진 비리 등 문제점 자료 축적’ 등을 ‘10대 핵심과제’의 일부로 삼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한나라당이 공작정치의 옛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문제가 언론보도를 통해 커지자 한나라당은 ‘총재에게 보고되지 않은 실무자 개인 차원의 문건’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건의 이름이 이 당의 기획위원회 이름으로 돼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한나라당에는 지난날 권위주의정권 때 공작정치에 깊이 개입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렇기에 이 문건 역시 한나라당 쪽으로 부분적으로 이어져온 공작정치의 한 흐름이 반영된 것으로 보게 된다.

▼중상모략-음해 뿌리 뽑아라▼

역사를 보면 어느 시대 어느 정권에나 간신(奸臣)이 있었다. 그저 윗사람 비위 맞추기에 급급해 윗사람의 귀와 눈을 가려놓은 채 매사 “잘 돼갑니다. 염려 놓으십시오”라는 아첨에 도가 텄거나, 이상한 안(案)을 만들어 열심히 일하는 척 재주를 부리거나, 경쟁자나 어진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중상모략과 음해에 능숙한 간신들이 있어 윗사람을 망치고, 정권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게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가자면, 또는 요새 유행하는 말로 국정을 쇄신하자면 우선 간신부터 쫓아내야 한다. 이 말은 여야 모두에게 해당된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간신인지 알아내는 지혜, 그리고 간신으로 파악됐으면 그를 쫓아내는 용기, 이 두 가지를 여야의 정상급 지도자들이 갖고 있느냐에 있다. 국민은 이 점에서 여야 수뇌부의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

김학준(본사 편집·논설 상임고문)h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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