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조영래 변호사 10주기

  • 입력 2000년 12월 13일 18시 35분


조영래 변호사는 체인 스모커였다. 생전에 사무실에 가보면 마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줄담배를 태웠다. 86년 경찰관이 여대생 권인숙양을 조사하면서 성을 고문의 도구로 사용한 사건이 터졌을 때 일선 기자였던 필자는 그의 사무실에 자주 드나들었다. 80년대 민주화운동 관련 사건에 대한 수사기관의 발표는 거짓투성이였다.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군에 대해서도 경찰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더라’는 식으로 발표를 하던 시절이었다.

▷권인숙양 성고문 사건은 막바지로 치닫던 전두환 정권에 결정적으로 일격을 가했다. 공안당국은 성고문을 폭로한 권양에 대해 ‘혁명을 위해 성을 도구화했다’고 몰아붙였다. 심지어 모욕적인 언사로 권양을 묘사해 진실을 은폐하려고 들었다. 조변호사는 구치소에 수감된 권양을 수차례 접견해 수사기관의 인권탄압과 조작은폐 행위를 밝혀냈다. 권양은 석방된 뒤 ‘혁명’에 나서지 않고 지난 여름 미국 클라크대학에서 여성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줄담배는 군사독재 정권보다 가혹한 것인가. 군사정권의 투옥과 탄압에도 의연하게 버텼던 조변호사는 90년 43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어이없이 세상을 떠났다. 87년 양김(兩金)의 분열로 군부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돼 70, 80년대 민주화운동 세력이 의기소침해 있을 때였다. 지인들은 그가 ‘문민 정부’도, ‘국민의 정부’도 보지 못하고 간 것을 지금도 안타까워한다.

▷‘조영래 변호사를 추모하는 모임’(대표 홍성우)은 1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70, 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10주기 추모토론회를 가졌다. 무관의 변호사를 추모하는 모임이 10년 동안 해마다 빠지지 않고 성황리에 열리니 홍성우변호사의 정성도 그러려니와 의인은 죽어서도 외롭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필자는 10년 전 조변호사의 별세 소식을 듣고 담배를 여러 개비 태우며 오비추어리(사망기사)를 썼다. 오비추어리를 넘기고 나서 바로 담배를 끊었으니 나의 금연도 10주년이다. 조변호사의 삶은 짧았지만 그가 남겨놓고 간 빈 자리가 더없이 커 보인다.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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