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맥길대 심리학과 로라 안 패티토 교수팀은 청각장애자가 수화를 할 때 뇌에서 언어를 처리하는 영역이 정상인이 말을 주고받을 때처럼 활동한다는 연구 결과를5일자 ’미국학술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 전두엽에서 언어처리 ▼
뇌에서 언어를 처리하는 부분은 좌뇌 앞쪽에 위치한 전두엽이다. 연구자들은 이 부분이 활동하는데 반드시 말이 필요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청각장애자와 정상인을 대상으로 비교 실험을 했다.
청각장애자들은 특정 명사를 나타내는 수화를 보고 해당하는 동사를 수화로 표현했다. 대조군인 정상인들은 같은 뜻의 명사를 듣고 역시 그에 맞는 동사를 말했다. ‘잠’이란 단어를 보고(또는 듣고) ‘자다’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연구자들은 이때 일어나는 뇌의 활동을 알아보기 위해 뇌속의 피의 흐름을 양전자방사단층촬영법(PET)으로 측정했다. 그 결과 청각장애인과 정상인 모두 좌전두엽에서 피의 흐름이 왕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말이 언어의 기원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수화를 연구해 온 페티토 교수는 “이번 실험을 통해 언어처리에 관여하는 뇌의 영역이 말하고 듣기만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사실 몇몇 과학자들은 인간이 언어생활을 하게 되는데 뇌의 진화가 발성기관의 진화보다 먼저일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초보적인 언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호모 에렉투스는 이미 180만 년 전에 등장했지만 현생인류의 발성기관이 나타난 것은 불과 10만 년 전이기 때문이다.
네안데르탈인의 경우 현대인에 훨씬 못미치는 발성기관을 갖고 있는 데도 노약자를 돌보고 죽은 자를 묻는 등 고도의 사회 생활을 해 왔다. 23만 년 전에 나타나 3만 년 전에 사라진 네안데르탈인이 이런 복잡한 사회생활을 했다는 것은 말하고 듣는 방법 이외의 언어행위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샌프란시스코) 의대 신경학자 프랭크 윌슨 박사는 1998년 저서 ‘손: 손의 사용이 어떻게 뇌, 언어, 인간문화를 만들었나’에서 언어의 뿌리를 말이 아닌 제스처에서 찾았다. 윌슨 교수는 “손의 진화는 뇌 용량을 급속히 팽창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언어를 처리하는 부분이 생겨났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손짓과 미분화된 말로 의사소통을 하다가 발성기관이 진화하면서 말이 언어행위를 도맡게 됐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수화는 어릴때 배워야 ▼
매사추세스공대 심리학자 스티븐 핀커 교수는 그의 명저 ‘언어 본능’에서 수화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단순한 손짓이 아니라 말과 같은 수준의 문법이 갖춰진 진짜 언어라고 말한다. 핀커 교수는 “뇌의 언어 영역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4살 이전에 언어를 익혀야 한다”며 “청각장애인 아이에게 수화를 못하게 한 채 억지로 상대방의 입술을 읽게 하고 말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그 아이의 언어생활에 돌이킬 수 없는 장애를 부른다”고 경고한다.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언어 처리 영역인 좌전두엽이 손상된 농아는 수화를 봐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연구 결과가 오래 전에 나온 바 있어 학계에서는 말과 수화가 뇌의 같은 영역에서 처리된다고 추정해 왔다”며 “이 연구 결과는 이 추측이 사실임을 말해준다”고 평가했다.
<강석기동아사이언스기자>alchimist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