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상식/美 민주주의도 완전하지는 않다

  • 입력 2000년 12월 17일 18시 36분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미국 민주주의가 전세계 국가가 본받아야 할 민주주의 체제라고 믿어온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민주주의 체제는 일당독재 혹은 일당 지배 체제, 간접민주주의 체제, 그리고 직접민주주의 체제 등 3개로 구분할 수 있다. 어떤 형태를 취하든 유권자 개개인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제한되거나 무시되는 제도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이번 미국 대선은 민주주의 원칙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두가지 허점을 드러냈다.

첫째, 이중적 간접민주주의제도라는 점이다. 유권자가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것이 아니고, 선거인을 통해서 선출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단위로 선거인단을 뽑고, 선거인단은 자신의 주의 최다수 득표 후보에게 찬성표를 던지도록 돼 있어 전국적으로 최다수 득표자가 낙선할 수 있다. 그러나 선거인은 법적으로 자신이 소속된 주의 다수 의사를 무시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의 의사와 선거인의 의사가 충돌할 수 있다. 또 선거인의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없으면 하원이 대통령을 뽑는데, 하원의원은 주단위로 투표하기 때문에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중적인 선거제도가 민주주의 사상과 배치되는 엘리트주의(대중불신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건국 지도자들이 헌법을 만들 때, 민중은 무식하기 때문에 그들이 직접 국가 최고통치자를 선출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발상에서 이런 제도를 도입했다.

선거제도가 복잡한 것은 미국이 연방국가여서 선거가 주단위로 시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절차가 더욱 복잡해지고 획일적인 개표절차와 방법을 채택하기 어렵다. 직접선거제도를 도입하면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구시대의 유물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미국과 다른 민주주의 국가는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우선 미국 민주주의는 아직도 발전단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은 세계화, 탈냉전, 민주화 시대에 걸맞게 정치제도를 개혁해 세계에 귀감을 보여야 한다. 미국은 탈냉전 시대에는 군사력만으로는 세계 지도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으며, 소위 ‘부드러운 힘’(문화적 영향력)이 세계 지도력의 중요한 요소가 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부드러운 힘은 미국 대중문화에만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고, 미국 민주주의의 사상과 도덕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만일 미국이 미국 민주주의는 결함이 없고, 다른 민주주의는 결함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누가 미국을 신뢰하겠는가.

또 민주주의 국가들은 어떤 민주주의 제도가 가장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칙에 부합하며, 민주주의가 어떻게 인권을 잘 보장할 수 있는지를 연구 검토해 민주주의 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 주권재민사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참정권을 갖도록 하는 것이며 1인1표주의를 완전히 보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박상식(전 외교안보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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