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규민/자살사이트

  • 입력 2000년 12월 17일 18시 49분


지구상의 생명체 가운데 인간은 유일하게 자살을 하는 동물이다. 자의식을 갖고 있어 그만큼 깨어지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35년 헝가리에서 ‘글루미 선데이’라는 노래가 레코드로 발매된 지 8주만에 187명이 자살했고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30여명의 연쇄자살자 때문에 발매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은 자살을 이타적 자살, 이기적 자살, 그리고 아노미적 자살로 분류했는데 앞의 예들은 사회변화에 따른 자신감 상실로 빚어진 아노미적 자살에 해당한다.

▷과학문명과 자본주의의 산물인 인터넷이 급속히 보급되면서 아노미적 자살은 인터넷망을 타고 우리의 바로 곁에까지 깊숙이 다가왔다. 2년전 일본에서 자살지원업자가 개설한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독극물을 배달받은 세 사람이 성탄전야에 목숨을 끊은 것은 바로 가상공간에 형성돼 있는 ‘자살시장’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려준 사건이었다. 세계적 검색엔진에 자살이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2만여개의 사이트가 뜨고 이 가운데 자살을 부추기는 사이트만도 1200여개에 달한다는 통계는 인간상실의 시대를 확인해주는 증거라 할만하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 자살사이트를 통한 촉탁살인이 벌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E메일 부탁을 받고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의 자살을 도와준 범인이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하는 장면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우리 모두에게 전율을 안겨준다. 인터넷의 익명성과 부도덕한 상혼이 결합해 토해내는 각종 부작용들을 오래전부터 경험하고 있지만 인터넷이 막상 인간생명까지 앗아가는 도구로 변질된 데서 문명의 역기능은 그 극치를 보여준다.

▷인터넷은 가상공간의 다양한 존재들을 연결하는 유용한 정보소통 수단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을 익숙한 주변으로부터 단절, 소외시키는 촉매이기도 하다. 인간 상호간의 직접적인 관계가 생략되기 시작하면 사회는 비인간화의 길로 치닫게 마련이다. 그 결과가 더 이상 연쇄자살로 이어지기 전에 스스로 급속히 진화하는 인터넷으로부터 인간을 지키는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이규민논설위원>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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