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영장-미란다원칙 무시▼
예수 탄생 2000년. 그의 탄생은 인간 역사의 새로운 시발점이 됐지만 그는 법정에서의 유죄판결에 이어 십자가에 못박혀 숨졌다. 그의 말대로 당시의 법률가들은 ‘예언자의 무덤을 파는 족속’이 되어버렸다. 예수에 대한 재판을 오늘날의 형법체계로 보면 어떻게 될까.
▽예수에 대한 재판〓서기 33년 12월 어느 날.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예수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먼저 ‘피고인 예수’에 대한 인정신문이 진행됐다.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갈릴리 사람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난 33세의 젊은이. 그는 가롯 유다의 고발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체포영장 제시도, 진술거부권 등을 알려주는 ‘미란다 원칙’ 고지도 없었다.
공소장에 기재된 혐의는 성전모독과 조세(租稅)거부, 메시아 참칭(僭稱) 등. 검찰석에는 70여명의 유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줄지어 앉았다. 변호인석은 비어 있었다. 국선 변호인도 선임되지 않은 것.
빌라도 재판장은 고민에 빠졌다. 예수의 범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증인 몇 사람이 법정에 섰다. 이들은 “예수가 가이사(황제)에게 세금을 내지 못하도록 했다”고 거짓 증언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예수의 혐의는 종교 국가가 아닌 로마에서는 중죄(重罪)에 해당하지 않았다. 빌라도는 “채찍 몇 대의 형을 선고하겠다”며 일어섰다.
제사장들이 발끈하며 공소장 변경을 요구했다. 왕의 이름을 사칭한 혐의를 추가하겠다는 것이었다. 로마에서 ‘왕명(王名) 사칭’은 ‘국가원수 모욕’으로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중죄.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 된 것이다.
재판장이 선고를 망설이자 유대 방청객들이 난폭해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예수를 사형에 처하라”며 아우성쳤다. 이성을 잃은 방청객들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던 빌라도는 결국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변호인도 없이 사형선고▼
▽예수는 유죄였을까〓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게 된 데는 종교적인 여러 이유가 있다. 그러나 직접적인 원인은 잘못된 재판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 재판’은 억지 혐의 적용, 법적 절차를 무시한 재판 진행, ‘마녀사냥’을 요구하는 백성들에게 휘둘린 재판부의 무리한 판결로 점철돼 있다.
뒤늦게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한 차례 시도됐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신학자들이 이스라엘 대법원에 예수에 대한 재심을 청구한 것. 그들은 “유대민족이 그동안 주권적인 사법기관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에 대한 재판을 따져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며 “잘못된 재판을 다시 심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대법원은 “소송기록이 없고 신약에 단편적인 기록만이 남아있을 뿐”이라는 이유로 재심청구를 각하했다.
▼'법'이용한 기득권층 횡포▼
▽잘못된 법적용의 결과〓예수를 사형에 처함으로써 위협이 되는 존재를 제거하기 위한 기득권층의 계획은 성공했다. 이들은 그 과정에서 ‘법’을 이용했다. 서울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공정성을 잃은 법적용이나 잘못된 판결은 한 사람의 인생 뿐 아니라 국가나 역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며 “예수에 대한 재판은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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