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코리아로 가는 길]다이내믹 프라이싱, 판매-구매자 1대1 가격

  • 입력 2000년 12월 18일 19시 00분


지난해 11월 온라인 경매를 도입한 북미 최대의 천연가스 운송업체인 엔론(Enron). 이 회사는 연간 2억달러 규모의 송유관 회사에서 최근 400억달러 규모의 무역회사로 변신해 가스 사업에서만 55%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회사의 주가는 지난해 37달러에서 올해 85달러로 올라가 최근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기업(Global Most Admired Companies)’ 부문에서 25위를 기록했다.

대표적인 ‘굴뚝’기업에서 온라인 기업으로 급성장한 배경은 실시간 경매(Real time auction)의 도입. 시간과 장소에 따라 가격이 다른 가스와 전기를 온라인으로 끌어들여 소비자의 조건에 적합한 가격에 팔아 매출액과 수익률을 동시에 높인 것. 엔론은 온라인 경매를 도입한 뒤 하루 200건이던 거래량을 2000건으로 늘렸으며 총 거래액수의 60%를 온라인으로 처리하고 있다.

경매와 같이 시장상황에 따라 수시로 가격이 변동하는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은 이처럼 고정가격제에 바탕을 둔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꾸며 경쟁 회사의 e비즈니스 사업을 촉진하고 있다.

▽실제 가치와 시장 가치의 격차 축소〓다이내믹 프라이싱에 대비되는 고정가격제는 대량생산시대에 방대한 판매물량을 관리하기 위해 도입된 시스템이라는 것이 신경제학자들의 견해.

고정가격제는 품목마다 매겨진 가격을 고수하기 때문에 시장이 변해도 너무 늦게 적응하고 전체시장 수요를 반영하기 어렵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판매자가 제시하는 가격과 실제 시장가치 사이의 격차가 줄어들 수 없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인터넷의 확산에 따라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고 구매희망자의 수와 성향, 이들의 희망가격과 양을 즉각 반영하는 수단으로 등장했다.

가격 변동이 자유로운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판매자가 1인이고 구매자가 다수일 때 경매로, 판매자가 다수이고 구매자가 1인일 때 ‘역경매’의 형태로 나타난다. 어떤 형식이든 온라인 경매에서 상품의 실제가치는 고정가격제 보다 시장가치에 훨씬 더 근접하고 있다는 것.

앤더슨 컨설팅은 인터넷을 이용하는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값을 매길 수 없는 골동품과 같은 희귀한 상품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가 떨어지는 컴퓨터 부품, 농산물, 표준화된 공산품 등으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시장수요의 폭과 양이 충분하지 않은 소(小)시장이나 구매자가 공급자와 직접 가격을 협상하는 독점 시장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고정가격제를 위협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간 전자상거래(B2B)시장에 눈을 돌린 미국 기업들은 지난해 이 가격제도를 도입한 뒤 재고물량 처분으로 이윤을 남기고 구매과정에서도 시간을 3분의 2로, 계약비용을 15% 가량 절감했다.

▽시장선점보다 가격설계가 더 중요〓역경매 형식으로 항공기 좌석표를 거래하던 프라이스라인닷컴의 주가는 올 3월 104달러에서 9월 4달러선까지 떨어지고 3·4분기 판매도 급격히 감소했다.

경매 참가자에게 한정된 정보와 편의를 제공하다가 핫와이어나 오비츠와 같은 신생 닷컴 기업들의 추격을 받고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것.

프라이스라인은 보다 강력한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 오프라인 항공사와 제휴를 맺은 이들 기업에게 좌석판매 중계자들을 빼앗기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분석했다. 프라이스라인의 방식은 일반 오프라인 항공사들도 흉내낼 수 있고 원가 구조도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

프라이스라인의 비즈니스 모델은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시장에 맞게 설계하지 않으면 시장 선점의 효과가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로 꼽히고 있다.

▽구매자와 판매자의 본격 대결〓세계적인 시장조사 단체인 포리스터 리서치는 B2B가 2003년경 전체 전자상거래의 3분의 2 수준인 8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 중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적용되는 거래는 99년 193억달러에서 2003년 650억달러로 올라가고 몇 년이 더 지나면 B2B거래의 3분의 1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시장에 본격 도입되면 고정가격제를 중심으로 한 공급자와 유통자의 시장 지배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구매자와 판매자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진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판매자는 구매자와 1 대 1 수준에서 가격을 협상하기 때문에 현장 가격(Spot Price)을 둘러싼 양자간 정보전쟁은 무기경쟁에 비유되기도 한다.

결국 대부분의 B2B 거래에서는 나스닥의 주가 결정과 비슷한 방식으로 실시간에 양자의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반영하는 가격 메커니즘이 시장을 주도한다는 것.

▽한계와 시사점〓다이내믹 프라이싱은 불완전 경쟁구도에서는 가격이 구매자가 예상한 것 보다 높거나 판매자가 희망하는 가격 보다 낮아질 위험이 있다. 같은 효용가치의 품목이라도 사이트마다 가격이 다르게 결정될 수 있다.

또 판매자는 새로운 경쟁구도에 편입돼 가격통제력을 상실할 위험을 안고 있고 구매자도 상품에 대해 완전한 신뢰를 줄 수 없는 단점도 나타났다.

이같은 장단점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장에 대한 국내기업의 준비정도는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안병훈 한국과학기술원(KAIST)경영대학원 교수는 “외국 기업의 경우 가격설계자(Price Designer)를 집중 양성하고 있다”며 “국내 기업은 겉모양은 갖췄으나 내부 메커니즘에 능통한 전문가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정위용기자>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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