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철의 스키세상]다리의 정렬과 스키화의 조절

  • 입력 2000년 12월 18일 20시 03분


스키는 체중과 중력에 의해 발생하는 힘을 제어하는 운동이고, 이 힘의 전달 과정에서 사람과 지면 사이에 스키화-바인딩-스키로 이어지는 연결 시스템(coupling system)이 끼어들기 때문에, 다른 운동에 비해서 장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런 면이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더욱 스키에 빠져들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알파인 스키가 발달하기 시작하였을 때, 스키 기술에 가장 중요한 장비는 단연 스키판 이었다. 당시에는 바인딩 및 스키화의 기능이라는 것이 매우 미비하여, 스키에 딸린 부속물 정도의 역할 밖에는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바인딩의 기능이 강조 되고 안전에 대한 의식이 바뀌자, 20세기 중반을 지나며 바인딩은 이탈 기능(releasibility)과 완충 기능(anti-shock function) 등을 구비하여 나름대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스키화는 여전히 단순히 스키와 발을 연결 시켜주는 구조에 불과하였다.

이런 스키화를 일거에 가장 중요한 스키 장비로 격상 시킨 것은, 지난 글에 자세히 소개한 시대를 앞서간 천재, 밥 랑게(Bob Lange)에 의한 플라스틱 스키화의 등장이었다. 부드럽고 목이 낮았던 가죽 스키화와는 달리, 60~70년대를 거치며 목이 높아진 딱딱한 플라스틱 스키화는 마치 스키와 합세하여 발을 돌리는 거대한 지렛대(lever arm)와 같은 형상을 띄게 된다. 단순한 연결 구조의 역할에서 벗어나 스키 기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안전 문제에 있어 핵심 장비가 되어버렸다.

가죽 스키화를 신었을 때는 다리와 발 모양에 스키화가 적응했지만, 목이 높고 딱딱한 플라스틱 스키화 안에서는 스키화의 모양에 따라 다리가 정렬을 한다. 이전에는 스키어의 다리가 스키화를 조종하였으나, 이제는 스키화가 스키어의 다리를 쥐고 흔드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습지 않은가? 인간이 발명한 기구가 인간을 더 불편하게 만들고, 그걸 해결하겠다고 머리 싸매고 방법을 생각하고... 안 올라 가면 될 높은 산에 돈 내고 올라가서 위험한 짓만 골라서 하며 내려오다가 다치고, 또 그것을 덜 다치게 해보겠다고 방법을 생각해내고….<다음에 계속>

은승표<정형외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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